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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밤 11시30분, 미국 주식쇼핑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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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모(45·서울 서초구)씨는 올 1월 말 커피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미국의 상장지수채권(ETN)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커피 전문점을 하는 친구에게서 ‘브라질 가뭄 탓에 커피 원두 값이 많이 오를 것 같다’는 말을 듣고서다. ETN은 증권사가 수익금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 성격의 상품으로, 구조와 거래 방식은 상장지수펀드(ETF)와 동일하다. 이씨는 “국내엔 커피 원두에 투자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어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며 “수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긴 하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까지 그가 올린 수익은 62.5%다.

 비슷한 시기 김모(74·서울 강남구)씨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추천을 받아 미국 증시에 상장된 하이일드(고수익)채권 ETF에 2억원을 투자했다. 매달 수익금이 나오는 상품이라 은퇴 생활자인 김씨에게는 말 그대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국내엔 월지급식 상품이 다양하지 않아 해외 상품으로 눈을 돌렸다”며 “가입 이후 매달 우리 돈으로 80만원의 분배금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해외 직접투자족(직투족)이 늘면서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상품의 범위도 넓어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1분기 해외 주식투자 규모는 17억600만 달러. 전분기 대비 26%,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361% 늘었다. 해외 직투족이 부쩍 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해외 주식투자 결제금액은 54억77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85%나 커졌다. 이 중 65.8%가 미국에 집중됐다. 민성현 삼성증권 주식전략팀 차장은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혀 있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이 호조를 보이자 투자자들이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국내에선 찾기 힘든 다양한 상품이 갖춰져 있다는 것도 해외 투자가 급증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 상장 ETF 1568개, 선택 폭 넓어 장점

 이들 해외직투족은 주로 어떤 종목에 투자하고 있을까.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우리투자증권에 의뢰해 2013년부터 올 1분기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산 상위 10개 종목을 살펴보니 투자 바구니에 담긴 상품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었다. 애플·구글·비자 같은 미국 대표 기업들의 주식부터 지수의 방향에 베팅하는 레버리지·인버스 ETF까지 고루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뿐 아니라 국채나 하이일드 채권 ETF, 미국 이외 지역에 투자하는 러시아 ETF도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대안상품부 이사는 “ETF 천국이라는 미국 투자가 늘면서 다양한 자산을 따라가는 ETF가 국내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상장된 ETF는 1568개에 달한다. 국내 ETF(149개)의 10배가 넘는 상품이 거래되다 보니 투자자들의 요구에 맞는 ETF를 찾아 맞춤형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매달 수익이 나오는 채권 ETF가 대표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돈줄을 죄고, 금리가 오름세를 탈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채 인버스 ETF를 찾는 투자자도 늘었다. 금리가 올라 채권 값이 떨어질 때 수익을 내는 ETF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시장이 급락하자 저가 매수를 노린 투자자들은 러시아 ETF를 대거 사들이기도 했다. 국내에선 러시아에 투자하는 단일 상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도 해외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경기 회복기에 큰 폭으로 성장하는 중소형주에 투자하되 그 상승폭의 3배 이익을 내도록 설계된 ‘중소형주 3배 레버리지 ETF’도 상위 10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엔 기초자산의 2배 넘게 이익을 내도록 설계된 ETF는 없다.

중국 쪽 투자 20% … 환차익 노리기도

 개별 종목 중엔 구글·테슬라·아마존닷컴 같은 나스닥 정보기술(IT)주가 사랑받았다. 지난해 나스닥 지수는 34.2% 급등했다. 올 들어서도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금리 인상 시사가 있기 전까지는 상승가도였다. 투자자들로선 국내 증시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워진 ‘고성장주’에 대한 갈증을 나스닥에서 푼 셈이다. 민성현 차장은 “거품론이 불거지면서 올 들어선 나스닥 종목에 대한 투자는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라며 “하지만 2000년 닷컴버블 때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당장 처분하기보다 장기투자 관점에서 보유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예전만 못하다곤 하지만 여전히 홍콩과 중국은 국내 해외 투자의 20% 비중을 차지하는 2위 시장이다. 게임업체 텐센트와 모토로라를 인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PC제조사 레노버 같은 기업들이 인기 종목이다. 이용훈 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팀장은 “중국 투자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국 내 중산층이 늘고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IT·헬스케어·친환경 같은 새로운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최근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위 10위권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 자동차도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종목 중 하나다. 이 팀장은 “2012년만 해도 탈에듀케이션그룹이나 투도우홀딩스 같은 미국 상장 중국 기업들이 인기였으나 중국 시장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홍콩에 상장된 ‘알짜 기업’으로 옮겨왔다”고 덧붙였다.

 미국 다단계 판매업체 허벌라이프와 뉴스킨도 몇 년째 꾸준히 상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는 종목이다.

 펀드 투자자들이 환헤지 상품에 주로 가입하는 것과 달리 해외직투족들은 환노출 전략을 쓴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윤학 이사는 “증권사마다 환헤지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이용 빈도는 많지 않다”며 “특정 시장의 강세를 전망하고 해외투자에 나서는 만큼 해당국 통화 가치가 오르면 한 번 더 수익을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용훈 팀장은 “주로 해외 투자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보니 위험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고 봤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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