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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새벽녘 물안개 피거든, 추억 찾으러 오드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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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봄의 도시다. 관광객들이 옛 경춘선 기찻길에 만든 레일바이크를 타고 춘천의 농익은 봄을 즐기고 있다.

벌써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쯤 꽃망울을 터뜨려야 할 개나리, 진달래도 벌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가끔 낮 기온은 20도를 웃돌고 성질 급한 청춘은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닙니다. 이미 산과 들은 신록으로 뒤덮였습니다. 농익은 봄날입니다.

상춘(賞春). 사전은 ‘봄을 맞아 경치를 구경하고 즐김’이라고 하네요. 떠나는 봄이 아쉬워 week&은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강원도 춘천은 다른 지역보다 봄이 조금은 늦게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춘천은 봄의 한가운데 들어선 듯했습니다.

춘천 토박이에게 물었습니다. “춘천에 봄이 활짝 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가장 흔하게 들은 말이 “개나리 만개했을 때”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남도처럼 벚꽃이나 산수유·진달래가 아니고 왜 개나리인지 물었더니 춘천시의 시화(市花)가 개나리이고, 춘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도 개나리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답은 춘천다웠습니다. 춘천시내에 외지인이 많아지면 봄이 왔다는 증거랍니다. 춘천의 겨울은 춥습니다. 추운 정도가 아니라 혹독하기로 유명합니다. 겨울에는 외지인이 춘천을 찾을 일이 거의 없지만, 날씨가 풀리면 외지인이 속속 춘천으로 몰려옵니다. 실제로 춘천 곳곳에서 그러니까 강촌에서, 닭갈비골목에서, 실레마을에서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는 환한 얼굴의 청춘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2010년 12월에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하고 뒤이어 2012년 2월 ITX청춘열차가 달리고 난 뒤로 춘천은 옆 동네처럼 가까워졌지요.

레일바이크 강촌역~김유정역 구간에 있는 터널 속의 정겨운 풍경.

춘천의 봄과 관련해 가장 솔깃한 대답을 해준 사람은 김유정문학촌 해설사 안명순(54)씨였습니다. 그는 “물안개 필 때”라고 하더군요.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물안개는 날씨가 따뜻해져야만 볼 수 있습니다. 수온이 올라야 새벽녘에 물안개가 피거든요. 4월 중순부터 조금씩 조금씩 수온이 올라가면 공지천에도, 의암호와 소양호에도, 북한강에도 물안개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춘천(春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봄내’, 즉 ‘봄이 오는 시내’입니다. 안명순씨 말처럼 춘천의 봄은 호수에서, 다시 말해 물에서 옵니다. 카누에 몸을 싣고 봄 향기 물씬 풍기는 의암호를 가로질렀고, 레일바이크를 타고 북한강변을 달렸습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포근했고 시원했습니다. 『봄·봄』과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고향마을에도 들렀고, 춘천의 명물 닭갈비와 막국수도 먹었습니다. 꽃은 지고 없었지만, 한껏 봄을 느낀 기분이었습니다. 봄볕 따사로운 주말, 봄이 흐르고 있는 고장 춘천으로 떠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레일바이크 김유정역은 강원도 출신 작가들의 대형 책 모형으로 만들었다.

레일바이크 타고 북한강변에서 느끼는 봄

1980~90년대 서울 등 수도권 대학에 다녔으면 강촌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산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했건, 우르르 MT를 갔던 간에 강촌은 청춘의 한 시절 한 번쯤은 거쳐야 할 필수 코스였다. 2010년 경춘선이 복선화되면서 추억 서린 강촌역이 없어졌지만, 강촌역사 기둥은 예전 그대로 청춘의 낙서로 도배돼 있다.

 지금 강촌역 자리에는 대신 레일바이크가 들어서 있다. 추억 여행을 온 중년 부부나 데이트 나온 청춘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달렸던 그 기찻길을 지금은 두 발을 열심히 저어 달린다. 북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시원해서 좋고, 옛 경춘선 기차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경치를 천천히 지켜볼 수 있어 좋다.

 강촌 레일바이크는 강촌역과 김유정역에서 각각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이용객 대부분이 옛 생각이 나서 그런지 강촌역에서 출발하는 걸 더 좋아한다. 강촌 레일바이크는 편도 8.2㎞ 길이로 한 번 타면 1시간20분쯤 걸린다.

 레일바이크 코스에는 터널이 모두 네 개 있는데 그중에서 두 개 터널이 이벤트 터널로 꾸며져 있다. 강촌역에서 출발할 경우, 첫 번째 나오는 터널이 클럽터널이다. 울긋불긋한 조명을 설치해 클럽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 신나는 유행가도 나온다. 터널에 들어서면 청춘 대부분이 환호성을 지르며 어깨를 들썩인다. 다음에 나오는 터널은 ‘천상의 은하수’ 터널이다. 반딧불이처럼 생긴 작은 전구가 반짝이고 철길 밑에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레일바이크는 옛 경춘선의 간이역 경강역에도 있다. 3.6㎞ 길이의 코스를 왕복 순환하는데 반환점이 북한강 가평철교 위에 있다. 약 50m 높이 상공에서 레일바이크를 타는 재미는 경강역 코스에서만 맛볼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요금은 강촌역, 김유정역 코스와 마찬가지로 2인승 2만5000원, 4인승 3만5000원. 강촌레일파크(railpark.co.kr), 033-245-1000.

물레길 붕어섬 코스에서 카누를 즐기는 청춘 남녀들.

카누에서 느끼는 의암호의 봄

춘천은 호반의 도시다. 소양강 물길이 모인 의암호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춘천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한 레저 아이템이 물레길이다. 물레길은 걷는 길이 아니라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물길이다. 춘천 물레길은 2012년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의암호변 송암스포츠타운에 카누 선착장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카누는 어른 2명, 어린이 2명 등 최대 4명이 탈 수 있다. 물레길에는 의암댐·붕어섬 등을 갔다 오는 4개 코스가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물결이 잔잔한 의암댐 코스다. 초보자용 물길로 약 3㎞ 길이인데 의암댐을 갔다오는 데 한 시간쯤 걸린다.

 이용자는 대부분 카누를 처음 타보는 초보자다. 그래서 겁을 먹는다. 카누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카누도 좌우로 흔들려 정말 물에 빠질 것 같기도 하다. 물레길 임병로(36) 대표는 “한 해 5만 명 이상이 카누를 탔지만 지금까지 물에 빠진 손님은 딱 두 명 있었다”며 “남자가 카누를 흔들며 장난을 치다 여자친구와 물에 빠진 경우였다”고 말했다.

 선착장을 떠나 호수로 들어서면 흔들림이 많이 줄어 제법 여유가 생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면 가만히 있어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부터 삼악산에 핀 산벚꽃도, 의암골 낚시터의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반환점은 의암댐 근처 인어조각상이다.

 다음 달 1~1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관광주간에는 카누를 이용한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평소에는 주말에만 이용 가능한 오전 7시30분 카누 체험 프로그램이 관광주간 내내 진행된다. 이른 아침에 나가면 의암호에 피어나는 물안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중국이나 홍콩에서나 볼 수 있는 드래건보트 대회, 카누슬라럼 대회도 관광주간 기간에 열려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직접 카누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다. 주말을 이용해 한 달간 진행하는데 통나무를 자르고 붙여 카누를 만든다. 가격 약 300만원. 지금까지 30명이 자신의 카누를 만들어 가져갔다. 물레길 카누 체험은 한 척(어른 2인 기준)에 3만원이며, 어린이 한 명에 5000원이 추가된다. 사단법인 물레길(mullegil.org), 070-4150-9463.

김유정 문학촌 내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생가와 기념관 모습. 왼쪽 초가가 김유정의 생가를 복원한 것이다.

김유정의 봄·봄

김유정역에서 5분쯤 걸어가면 소설가 김유정(1908~37)의 생가와 문학관 등이 모여 있는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김유정역은 국내에서 하나뿐인 인명(人名) 역이다. 원래 이름은 신남역이었지만, 2002년 김유정문학촌이 들어서면서 2004년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김유정문학촌에 도착하면 해설사부터 찾아야 한다. 해설사의 도움이 없으면 감흥을 느끼기 힘들어서다. 기념관에는 김유정의 육필원고나 유품이 한 점도 없다. 김유정의 휘문고보 친구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기 전에 그의 물품을 챙겨 월북해버려서란다. 해설사는 매일 10여 명이 기념관에서 대기 중이며 무료다.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져야 김유정의 짧았던 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김유정은 서른 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11일 전 안회남에게 썼다는 마지막 편지를 보면 김유정의 안타까웠던 말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닭 30마리를 고아 먹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 100여 마리를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김유정문학촌이 들어선 마을의 이름이 실레마을이다. 여기서 실레는 떡시루의 강원도 사투리다. 실레마을 동남쪽 금병산(652m)에서 내려다본 마을 모습이 시루를 닮아서 실레마을이 됐다.

 이 실레마을 구석구석을 잇는 5.2㎞ 길이의 길이 있다. 이름하여 실레이야기길이다. 이 길에는 인간 김유정의 일화는 물론이고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이를테면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은, 명창 박녹주를 짝사랑하다 실연한 김유정이 허구한 날 주막에 들러 술을 마셨는데 그때 자주 먹었던 안주가 코다리여서 붙인 이름이다.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장인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등 실레마을에 살았던 실존 인물의 삶을 소설로 그린 김유정 작품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소설 『봄·봄』 속 점순이가 눈앞에서 뛰어다니고, ‘욕필이’로 불렸던 배참봉댁 마름 김봉필의 걸쭉한 욕지거리가 들릴 것 같다. 입장료 무료. 김유정문학촌(kimyoujeong.org), 033-261-4650.

글=이석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여행정보

춘천은 수도권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시청에서 춘천까지 자동차로 1시간30분이면 닿는다. ITX 청춘열차를 타면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청량리∼춘천 어른 6000원. 춘천은 맛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2010년 12월 경춘선이 복선전철이 된 이후에는, 춘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소양로 2가에 전통의 춘천 맛집 ‘실비막국수(사진)’가 있다. 1965년 고(故) 이태식·양정희씨 부부가 문을 연 뒤 지금까지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장남 이창훈씨가 주방에서 막국수를 뽑고, 며느리 서희경씨가 홀에서 손님을 맞는다. 막국수에 무채 무침을 넣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막국수 6000원. 033-254-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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