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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사 등 선박직 전원 생존 … 그들만의 정보 공유 의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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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06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7일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물세례 봉변을 당하며 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정홍원 국무총리는 19일 세월호 침몰 수색상황 발표를 수차례 번복한 데 대해 사과했다. 정 총리는 “정보를 빨리 전달하려다 혼선이 생겼다. 이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전파한 사항을 동시에 발표하도록 체계를 잡았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진도에 머무르며 현장에도 직접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부처 간 조율작업을 관장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하지만 정 총리의 때늦은 사과와 달리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사망·실종자가 300명에 육박하는 대형 참사로 번진 데엔 선장의 무책임, 안전 무감각, 정부의 무능이라는 ‘3무(無)’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위기상황에 허둥지둥하기만 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월호 침몰] 왜 골든타임 놓쳤나 … 대한민국 재난 현장의 무책임·무감각·무능

[무책임] 위험 지역서 자리 비운 선장
“배가 순항할 때는 선장의 역할이 없다. 그러나 좌초하고 풍랑을 맞고 파선할 때는 누군가 하선 명령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피터 드러커)

16일 오전 세월호에 선장은 사실상 없었다. 우선 위험지역 맹골수로를 건너가는 시간에 자리를 비운 게 이준석(69) 선장의 첫 번째 귀책이었다. 위기를 방치했다. 두 번째는 사고 이후다. 사태를 수습하기보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에 버거워했다.

결정타는 오전 9시30분 “퇴선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였다. 조타실에서만 공유된 정보였고, 객실엔 전혀 전파되지 못했다. 무의미한 외침에 불과했던 셈이다. 세월호 비극을 가르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한국해양대 윤종휘 교수는 “이 선장이 배에 남아 사태를 진두지휘하며 승객 안전 대피를 책임지는 리더십까지는 보이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도망치는 그 시각에 ‘위험하다, 탈출하라’고 객실 쪽에만 분명히 알렸다면 인명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내방송을 맡았던 강모(32)씨는 “오전 9시30분쯤에도 상부에서 안내데스크로 ‘승객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라’는 내용이 전달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후 30분간에도 “방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똑같은 방송이 여러 번 반복돼 탈출 기회를 놓치게 했다.

그 사이 이 선장을 필두로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은 서둘러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엔진을 책임지며 1층 선미에 있던 기관실 선원들도 “올라오라”는 직통전화를 받고는 갑판으로 몸을 피했다. 이 선장,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 등 이른바 선박직 선원 15명은 전원 생존했다. 선박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핵심 인력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학생 탈출을 돕다가 유명을 달리했거나 실종된 선원은 주로 승객 서비스를 총괄하는 사무원이었다.

[무감각] 세월호 개조, 안전성 확인 의문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했다. 한국엔 2년 전 수입됐다. 청해진해운은 3∼5층에 승객을 116명 더 태울 수 있도록 선실을 늘리는 리모델링을 했고, 배 무게도 239t 늘었다. 오사카대 하세가와 가즈히코(長谷川和彦·선박해양공학) 교수는 “개조할 때 안전성을 충분히 확인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전관리지침을 어긴 의혹은 여럿이다. 안전관리 보고서에는 차량 150대, 화물 657t이 실렸다고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발표한 화물량은 차량 180대, 컨테이너 105개(1157t)였다. 50t 이상 나가는 대형 트레일러도 3대 실려 있었다. 무리한 구조 변경과 과도한 화물 적재로 무게중심이 올라가 배의 균형을 바로잡을 복원력(復元力)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화물을 제대로 결박했는지도 의문이다. 조타수 오용석(58)씨는 “컨테이너를 3~4층으로 쌓은 뒤 튼튼한 쇠줄이 아닌 일반 밧줄로 묶어 놓았다”고 증언했다. 사고 당시 급히 우회전하는 순간 화물칸의 컨테이너를 묶어 둔 안전장치가 떨어져 나가 컨테이너들이 한쪽으로 쏠리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게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선원 안전교육비로 불과 54만원을 썼다. 광고비 2억3000만원, 접대비 6060만원에 비해 훨씬 적은 액수다. 한국 사회에서 안전이 갖는 무게감이다.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 구조자 수를 오락가락해 빈축을 샀다. [뉴스1]

[무능 정부] 사고 수습 주체 오락가락
구조가 지지부진하자 통영함을 투입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2년 9월 경남 거제에서 진수된 3500t급의 통영함은 수중무인탐사기·자동함위치유지장치 등이 탑재된 최첨단 구조함이다. 하지만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17일 “음파탐지기·수중로봇 등의 장비가 제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투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590억원의 돈을 들여 만들고도 1년7개월째 방치돼 있는 셈이다.

정부 신뢰는 일찌감치 깨졌다. 승선 인원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덩달아 구조자·실종자 수도 춤을 췄다. 실종자가 구조자로 둔갑하거나 사망한 학생의 이름을 잘못 발표하기도 했다. 중대본은 17일 오전 11시엔 잠수요원들이 선체 진입에 성공해 식당까지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공식 발표는 세 시간 만에 뒤집어졌다. 해양경찰청이 “공기 주입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수정했다.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중대본 관계자는 “우리도 뉴스 속보를 통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중대본이 아니라 쪽대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재난방지 시스템은 허술했다. 최초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설치됐다가 다시 안전행정부의 중대본이 가동됐고,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차원의 사고대책본부 설치 계획을 밝혔다가 또다시 무기 연기했다. ‘수습 주체’가 오락가락하며 ‘컨트롤타워’가 흔들렸고, 초기 대응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눈치만 본 채 책임지고 일하는 공무원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은방 해양대 교수는 “9·11 테러가 났을 때도 일개 지역 소방서가 구조현장을 지휘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상급 기관은 지원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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