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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백년의 고독』 남미 문학 거장 잠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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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7일(현지시간) 타계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지난달 6일 자신의 생일에 자택을 찾은 취재진에게 인사하고 있다. [멕시코시티 로이터=뉴스1]
쿠바 혁명을 지원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왼쪽)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절친한 사이다. 사진은 2002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국가 올림픽 대회 개막식에 참가한 두 사람. [아바나 로이터=뉴스1]

남미 문학의 거장이자 『백년의 고독』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7)가 17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마르케스는 이날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 외곽의 코요아칸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정확한 사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암세포가 폐 등으로 전이돼 발생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케스는 1999년 림프암에 걸린 뒤 투병해 왔으며 2012년 7월 노인성 치매로 집필 활동을 중단했다.

 남미 문학을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마르케스는 27년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해 연안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외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외할머니에게 들은 신화와 카리브해 전설은 그의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인 동시에 그가 문학이라는 지도에 아로새긴 ‘마술적 리얼리즘’의 바탕이 됐다.

 그가 확립한 ‘마술적 리얼리즘’은 남미 대륙의 역사와 토착 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허구를 부각하며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새로운 소설 미학이다. 장편 『백년의 고독』 등을 번역한 조구호씨는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이 아니라 남미의 현실을 보다 넓은 층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에 만연한 것을 시적 변형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이후 칠레의 이사벨 아옌데와 영국의 살만 루슈디 등 많은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백년의 고독』(1967)은 마르케스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그가 66년 멕시코시티에서 18개월간 칩거하며 쓴 이 작품은 콜롬비아의 가상의 마을 ‘마콘도’를 지배하는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에 걸친 흥망사를 통해 스페인 식민지 시기와 내전, 미국 자본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남미의 현실을 그려냈다.

책은 세계 35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3000만 부 이상 팔렸다. 칠레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는 “『돈키호테』 이후 스페인어로 쓰인 가장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마리오 베르가스 요사 등과 함께 20세기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지만 『백년의 고독』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마르케스의 삶은 팍팍했다. 엘 에스펙타도르의 기자로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쓰던 그는 55년 침몰한 해군 구축함에 밀수품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특종을 하지만 당시 독재자의 심기를 거슬러 유럽 특파원으로 쫓겨나고,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뒤 신문이 폐간돼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빈 병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며 본격적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좌파적 입장에 섰던 그는 쿠바 혁명을 지원하며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는 막역지우가 됐고 니카라과의 좌익단체인 산디니스타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자 소설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 『족장의 가을』에서는 남미 독재자의 광기와 고독, 몰락 등을 그려냈다.

 마르케스의 삶을 지배한 모토는 ‘소설을 쓸 것이냐, 죽을 것이냐’였다. 눈을 감은 그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의 서문 중)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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