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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폭행·학대 당하는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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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시설 여학생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아동보육시설 원장 정모(53)씨는 아동학대, 폭행, 보조금 부당 수령 등으로 처벌을 받은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하지만 시설을 관리·감독하는 안산시는 이런 사실 대부분을 “몰랐다”거나 “경찰 조사가 시작된 이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감독 아래 청소년 50여 명이 범법자에게 무방비로 맡겨졌던 셈이다.

 정씨는 2002년부터 이 시설의 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시설을 운영하는 조계종 사찰 ‘자현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다. 시설은 1986년 대부도 쌍계사가 미인가 시설로 설립했으며 90년대 중반 원생이 50여 명까지 늘어났다. 2004년엔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원생 숙소로 현대식 건물이 준공됐다. 정씨는 2006년 3월에는 이를 안산시에 아동양육시설로 정식 등록했다. 이 무렵 직원 수를 부풀려 시에서 보조금 3300여만원을 더 타냈다. 사찰 설립자 등의 이름으로 돼 있던 숙소동 건물과 인근 토지는 모두 자기 것으로 돌려놨다. 보조금 부당 수령 행위는 2007년 9월 경찰에 적발됐다. 정씨는 벌금 500만원을 냈다.

 정씨가 아동을 학대하고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때다. 시설 직원이었던 불교 신자 18명이 2007년 7월 조계종단에 진정서를 냈다. “정씨가 매일 저녁 술에 취해 아이들을 무차별 구타해 다친 아이가 한둘이 아니다. 후원금을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쓰고 있으며 자신의 노후설계 보험료로 돌려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종단은 보조금 부당 수령 등 불법행위를 이유로 정씨의 승적을 박탈했다. 하지만 정씨의 범법행위는 더 심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009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여학생 A씨를 수년간 성폭행하고 다른 여학생은 추행했다. 2011년 2월에는 시설 내 관리 소홀로 중학교 3학년 남학생 3명이 또래 장애학생 1명을 폭행해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또 정씨는 ‘성폭행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31일 “허락 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며 한 원생(13)의 머리를 몽둥이로 때려 다치게 했다.

경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런 후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때린 게 아니라 아이가 몽둥이에 머리를 갖다 댔다. 돈은 아이들을 위해 썼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안산시는 이런 사실을 대부분 몰랐다. 발각된 사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행정명령만 내렸다. 시 보조금 부당 수급 사실이 적발됐을 때 시설 보조금을 1년간 20~30% 정도 적게 지급한 게 전부였다. 이후에는 다시 보조금을 100% 지급했다. 시설 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보조 교사가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라며 개선명령만 내렸다.

 정씨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원장직을 수행했다. 시설 운영정지나 경고조차 받은 적이 없다.

 꽃동네대학 이태수(사회복지학) 교수는 “관련 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현장 지도만 철저히 해도 아이들을 위협하는 시설 운영자를 퇴출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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