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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베 팔려던 미테랑처럼 … 문화재 반환, 공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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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왼쪽)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외규장각 도서 중 하나인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갖고 왔다. [중앙포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보급 문화재라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25~26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네 번째 방한이다. 23~25일 일본 국빈방문을 마친 뒤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돌아올 국보급 문화재는 국새(國璽·국사에 사용되는 도장)인 황제지보(皇帝之寶)와 어보(御寶·왕실의 의례용 도장)인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등 대한제국시대 유물 9점이다. <본지 4월 15일자 16면>

 6·25전쟁 당시 미군이 자국으로 빼돌린 걸 지난해 미국 정부가 유족들로부터 압수해 돌려주는 것이다.

 문화재 반환의 이면에는 각국의 이해가 깔려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국가 관계에서도 통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전통 우방국들의 동맹 의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국으로선 러시아의 무력에 맞서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가 더 중요해졌다.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는 한·일에 미국이 계속 화해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재를 반환받는 과정엔 이번처럼 정상회담이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예전에도 그랬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은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다. 외규장각은 정조가 1782년 강화도에 설치한, 왕립도서관 격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에서 도서를 약탈해갔는데, 프랑스는 이를 국립도서관에 보관해 왔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1975년이었지만 문제가 본격 다뤄지기 시작한 건 18년 뒤인 93년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고속철도 도입을 추진하고 프랑스 알스톰사의 테제베(TGV)가 입찰을 노리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93년 9월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면서 그중 하나인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鑑儀軌)를 갖고 왔다. 의궤는 왕실의 각종 행사절차를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다. 미테랑 대통령은 “TGV를 한국이 선택하면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TGV는 한국 땅을 달리게 됐지만 이후 프랑스는 돌변했다. 결국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대여 갱신’의 형식으로 되찾은 건 2011년 4월이다. 2010년 11월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2010년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듬해 G20회의 개최국인 프랑스는 한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문화재청 남상범 사무관은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국내 관심도 커졌고, 외국과의 협상력도 강해져 환수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약소국 시절 문화재를 강탈당했던 나라의 반격은 세계적 현상이다. 이집트는 2009년 12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던 고분벽화 5점을 모두 되찾았다. 자국에서 문화재 발굴 활동을 하는 프랑스 학자와의 협력 관계를 모두 끊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였다. 2009년 2월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엔 1860년 프랑스군이 위안밍위안(圓明園·청나라 황제의 여름별궁)에서 약탈해간 12지신상 중 토끼와 쥐 머리 청동상이 출품됐다. 중국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한 중국인은 거액을 써내 청동상을 낙찰받은 뒤 대금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크리스티 경매를 저지했다. 결국 청동상은 2013년 6월 모국으로 돌아왔다.

허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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