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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 통계 개편이 반갑잖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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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1분기 정보통신기술(ICT) 상품 수출이 412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 증가한 수치다. 효자 품목인 휴대전화와 반도체, 디지털TV의 선전 덕분이다. 이들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오던 일본을 확실하게 넘어섰다. 정보기술 강국, 디지털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마냥 달갑진 않다. 전체적인 수출 기상도는 그다지 밝지 않다. 1분기 전체 수출은 1383억 달러였다. 증가율이 2.2%로 ICT의 3분의 1 남짓에 불과하다. 휴대전화를 제외한 주력 품목들이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조선산업은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5년 넘게 수주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교역이 별로 늘지 않아 해운산업도 울상이다. 수출액을 늘리는 데 한몫해 왔던 정유산업도 유가가 안정되면서 실적이 나빠졌다. 그나마 이들 품목의 부진을 보완해왔던 자동차 수출도 올 들어 정체 상태다.

 이런 상태는 쉬이 바뀌지 않을 듯싶다. 지난 연말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이 전망한 올해 평균 수출증가율은 6.4%가량이었다. 미국과 유럽 같은 주요 시장의 소비가 살아나고 중국의 성장엔진이 다시 가동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 회복세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 넘쳐나는 돈에 중독됐던 세계 경제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라는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기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고, 유럽의 재정위기 탈출도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중국경제 둔화라는 변수까지 가세했다. ‘수출 한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수치로는 위기를 잘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국내총생산(GDP) 산정 방식과 함께 국제수지 통계를 개편했다. 국내기업과 해외 자회사 간 거래는 통계에서 빼고, 해외 자회사의 수출입은 넣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돼 다른 나라로 수출되던 휴대전화가 베트남이 아닌 한국의 경상수지로 잡힌다. 가공무역도 한국의 수출 실적이 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정한 기준이라지만 꼭 좋은 일은 아니다. 흑자 규모가 커 보일수록 외국의 견제도 심해질 것이다. 수출과 국내 체감 경기 사이의 간극도 더 커질 것이다. 새로운 통계에선 해외 생산이 늘어날수록 수출이 잘되는 걸로 나타난다. 해외 공장에 내보내는 부품과 원자재 값보다 이들이 만드는 완제품 값이 더 비쌀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국내 기업들은 해외 생산을 늘리는 중이다. 수출을 주도하는 ICT산업은 이미 완제품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만들고 있다. 반면 ‘국내 생산’을 기준으로 관세청의 통관기준 수출액은 3년째 5500억 달러에 발이 묶여 있다.

 이래저래 한국에 유리할 게 없는 개편이다. 국민과 정부, 기업 모두 숫자의 허상에 빠지지 않을 일이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