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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증거조작 vs 리크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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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나쁜 운전자는 다른 나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글귀다. 그제 나는 간첩 증거조작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서 그 말을 떠올렸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두 국가기관의 불법과 무능이 빚어낸 대형 참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비견되는 것이 미국에서도 있었다. 이른바 ‘리크게이트(leak gate)’다. 두 사건엔 한 개의 공통점과 두 개의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세계 어느 나라든 기밀사항으로 취급하는 정보기관 비밀요원의 신원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요원 신원이 노출되면 당사자의 생명은 물론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다.

 리크게이트는 2003년 7월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원이 공개되면서 불거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에 비판적이었던 조셉 윌슨 전 이라크 대사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이 CIA 요원이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증거조작 사건에선 중국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블랙(비공개) 요원과 협조자들이 서류 위조에 동원되면서 그들의 정체가 발가벗겨졌다.

 두 사건의 차이점은 사회적인 대응 태세에 있다. 우선 수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자. 부시 행정부의 내부 인사가 누설(leak)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CIA 요청으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된다. 부시 대통령은 “연루된 자는 누구든 파면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조사 대상에 대통령과 부통령이 포함된다. 부시는 회고록 『결정의 순간(Decision points)』에서 당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본래 특별검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정보 누설은 심각한 문제였으므로 충분히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나를 비롯해 백악관 관리 대다수와 면담을 진행했다.”

 리크게이트 수사에 성역이 없었다면 증거조작 수사의 한계는 명백했다. 조사 방식부터 직위별로 달랐다. 대공수사국장(1급)은 서면조사를 했고, 남재준 원장은 서면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리했다. “남 원장 등이 증거 입수와 관련해 보고를 받거나 관여한 증거가 없다”는 게 수사팀 해명이었다.

 두 번째 차이는 사후 처리다. 2년여의 수사 끝에 특별검사는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를 위증과 사법방해 등 혐의로 기소한다. 2007년 6월 법원이 리비에게 징역 2년6월과 벌금 25만 달러, 2년간의 보호관찰을 선고하자 부시는 징역형을 감형한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만료를 며칠 앞두고 부통령 체니는 부시에게 리비에 대한 완전 사면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부시는 고심을 거듭하다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회의에서 딕(체니)에게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딕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사를 전쟁터에 내버려두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결정의 순간』 중)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제 오후 4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대검 대변인을 기자실로 내려보내 “깊은 유감”을 나타낸다. 오후 8시.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다. “실무진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 사안이지만, 지휘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사표를 즉각 수리한다.

 어제 오전. 남재준 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3분간 대국민 사과문을 읽은 뒤 퇴장한다. 뒤이어 박 대통령은 “또다시 국민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리 유감 표명, 대리 사퇴, 대국민사과…. 사태 수습은 자로 잰 듯이 착착 전개된다. 그러나 진정 책임을 지려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지겠다”(남 원장)는 다짐에도 울림은 없다.

 대북 정보망 붕괴는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증거조작이 남긴 후유증이 리크게이트보다 훨씬 크고 깊어 보이건만 우린 또 “믿어 달라”는 말 앞에 서 있다. 그 속수무책의 자신감이 나는 서글프고 두려울 뿐이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