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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시급한 이민정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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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30면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국민의 평균 수명 연장과 낮은 출산력으로 인해 이는 구조적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령화는 노동력 부족을 초래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위협 요인이므로, 정부는 수년 전부터 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의 출산력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 개방은 고령화가 던지는 암울한 미래를 타개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 인력을 경제성장을 위한 엔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민 수용의 필요성만 강조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검토해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외국인 전문기술인력 정책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내에 취업한 외국인 전문·기술자 수는 많지 않다. 약 5만 명에 달하는 전문·기술 사증 소지자 중 대다수가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 강사다. 그들을 제외하면 명실상부한 전문기술 인력은 극소수다. 기업과 대학이 국제화를 외치고 있으면서도 실제론 폐쇄적 고용 관행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외국인 전문인력 정책은 여러 부처로 분산돼 있어 통합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취업 중인 외국인 전문인력이 국내 노동시장과 경제발전에 미치는 효과도 측정하지 않은 채 막연히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냐는 식이다. 정부가 외국인 우수 인재 충원 정책을 발표할 때 빠지지 않는 골드카드나 사이언스카드 등 ‘출입국 우대 제도’로 외국인 우수 인재를 충원할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출입국 관리와 물류 서비스에서 몇 년째 세계 1위를 차지한 인천공항에선 출입국 우대 제도와 관계없이 이미 이코노미 클래스를 탑승한 승객들도 수하물보다 더 빨리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보다는 국내 조직에서 외국인 우수 인재를 충원할 수 있도록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모든 국가는 외국인 전문·기술자와 투자자를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자국의 기업이나 대학에서 외국인 우수 인재를 충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 부지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세제상의 특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민 수용에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취해 온 독일과 일본도 이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각국 정부는 외국인 전문·기술자 유입이 자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측정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함을 참고해야 한다.

우리의 저숙련 외국 인력 정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10년 전부터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 초기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취업 기간은 최장 3년이었으나, 그 후 4년10개월까지 연장되었고, 2012년에는 ‘성실 근로자 제도’를 시행해 재취업을 허용했다. 다시 말해 외국인 근로자는 10년 가까이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한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동반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 가족에겐 ‘동반 사증’(F-3)을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합법 취업 이주노동자의 가족 동반권’이라는 국제규범의 위반,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가족생활을 영위할 권리’의 침해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대책이 필요하다.

그뿐 아니다. 3년 후면 10년간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올 텐데, 그들의 국내 정착 허용 여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기계는 10년간 사용하면 고물이 되지만 10년간 같은 직업에 종사한 근로자는 ‘산업의 달인’, 즉 기능인력이 된다. 그들을 전문·기술자에 준하는 처우를 할지, 아니면 여전히 저숙련 인력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새로운 이민정책 수립과 추진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 있으나,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은둔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세계 중심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이민 허용을 통한 인적 개방이 필수적이다. 쇄국과 폐쇄의 길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고려하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곳곳에 놓인 장애물을 어떻게 제거하는가가 관건이다. 이민 개방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연구해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민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법률과 행정조직을 정비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설동훈 서울대 사회학 박사. 한국 이주 연구 네트워크 회장 등을 맡아 이민정책을 연구해 왔다. 저서로는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사회』 『노동력의 국제이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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