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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난 별, 넌 별, 빛나는 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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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12년 미국의 실력파 싱어 송 라이터 벡(Beck)은 앨범 ‘송 리더(Song Reader)’를 발표했다. 본인은 앨범이라고 했지만 실제 음반은 나오지 않았다. 오직 악보로만 출판됐고 이후 공연에서 음악으로 들려줬을 뿐이다. 평소 잊고 있던 ‘악보’의 가치를 일깨운 작업이다.

 어제 새 앨범 ‘8’을 선보인 가수 이소라도 앨범 발매 전 악보를 공개했다. 자신의 SNS에 타이틀 곡 ‘난 별’ 등 2곡의 자필 악보와 가사를 올린 것이다. 악보 공개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팬들은 악보를 퍼 날랐고 커버 열풍이 이어졌다. 팬들, 실용음악 전공 학생들,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난 별’을 부르거나 연주했다. 나중에는 가수 박효신·손승연,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 프로들까지 가세했다. 이소라의 ‘난 별’이 세상에 나오기 전, 다양한 버전의 ‘난 별’이 이미 등장한 것이다.

 이는 원곡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시켰다. 이소라의 목소리로, 원래의 편곡으로 듣는 ‘난 별’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감이 커졌다.

 이소라는 앨범 발매와 함께 ‘난 별’ 가사를 손글씨로 쓴 뮤직비디오도 선보였다. 팬들에게도 ‘난 별’ 가사를 손으로 써 올리면 그것으로 개인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줘 공유하게 했다. 고객참여형·맞춤형·쌍방향 소통형 마케팅이다. 디지털 시대, 악보와 손글씨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린 마케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악보의 존재와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 것이 흥미롭다.

 이소라는 새 앨범에서 거리낌 없는 록을 선보여 평단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난 별’은 비교적 과거 음악의 연장선에 있다. “우주의 한 부분으로 살며/ 믿는 대로 생긴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을 때 오는/ 빛나는 결과들에 감사하며/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빛나는 별” 그녀가 쓴 노래 가사다. 무심히 관조하듯 읊조리며 “난 별 넌 별 빛나는 별”이라 노래한다.

 문득 “수많은 별들은 순한 양떼처럼 소리 없이 운행을 계속하고, 그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라는 알퐁스 도데의 그 유명한 『별』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인집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양치기 소년이 자기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아가씨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작곡가 정지찬은 파리 여행 중 몽마르트르 언덕 성당 문밖에서 기도하는 남자를 보고 이 곡을 썼다고 했다. 별을 보지 않고 산 지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겠다. 오늘 밤은 꼭 별을 봐야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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