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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식은 소중하다, 설령 유용하지 않더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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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는 중견배우와 신예의 뛰어난 조합 덕분에 작품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다.

4월은 학부모에게도 어쩌면 잔인한 달 아닐까. 개학 후 한 달 즈음 지났지만 여전히 조바심은 줄지 않는다. 학교에 적응을 하면 하는대로, 또 못하면 더더욱이나.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걱정은 점점 더 커진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1980년대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포드+케임브리지) 입시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국에서 지금의 우리 교육현실과 가장 비슷했던 때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학업 스트레스로 숱한 학생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해도 어른들은 “뭐, 할 수 없지…”라며 체념하는, 그런 무기력한 모습 말이다. 맞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시가다.

 이야기는 명문대 합격자 수가 학교의 명예와 능력을 보증한다고 믿는 교장이 ‘쪽집게’ 역사 교사 어윈을 영입하면서 시작한다. 진리,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주려는 문학교사 헥터는 이에 반대되는 중심 축이다. (※영국 명문대 입시의 핵심 과목은 역사와 문학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철학·문학 콘텐트가 방대하다. 물론 이를 이해하지 못해도 극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서로 정반대의 것을 추구하는 엘리트 교사 사이에서 8명의 학생은 누구 말을 들어야 옳은 선택일지 혼돈에 빠진다. 자, 어떤 결론이 나올까.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학업성취보다는 인생의 낭만을 찾게 해주는 게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걸 알려줄까. 아니다. 연극은 막을 내릴 때까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 작품은 2004년 영국 초연 후 2006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최근 영국의 한 일간지 조사에서도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공연’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두 교사 역은 배우 최용민, 이명행이 열연한다. 연극에 평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기대감을 갖게 되는 캐스팅인데, 실제로 기대에 100% 부응한다. 학생 역으로는 최근 연극계에서 떠오르는 신인들로 채웠다. 대학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중견배우와 공연계의 신예로 짜여진 이 조합 덕분에 작품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 비평가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만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 “모든 지식은 인간에게 유용하든 유용하지 않든 그 자체로 소중하다.”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4월20일까지. 02-708-5001

연극 배우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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