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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루쉰공원에 윤봉길 이름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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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윤주 매헌기념관장이 윤봉길 의사 동상 앞에서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보여 주고 있다. 아래 사진은 매헌(梅軒)이라고 쓴 현판이 걸린 상하이 루쉰공원 정자. [장세정 기자]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32) 의사의 항일 의거 82주년 기념일(4월 29일)을 앞두고 윤 의사의 조카 윤주(67) 매헌기념관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앞으로 공개 서한을 띄웠다. 윤 관장은 A4 용지 5장 분량으로 된 서한을 6일 중앙일보를 통해 공개했다.

 편지에서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힘쓰는 시 주석께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항일영웅인 안중근(安重根)기념관을 시 주석이 최근 하얼빈(哈爾濱)역 의거 현장에 건립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관장은 “대한민국에 대표적인 항일영웅이 한 분 더 있는데 매헌 윤봉길 의사”라며 “윤 의사는 중국인에게도 영웅 ”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1932년 1월 28일 일본군이 상하이를 침략하자 광둥 출신들로 구성된 중국 제19로(路)군이 쑹후(淞<6EEC>·상하이 일대)항전을 벌였으나 2418명이 숨지고 패했다. 그해 4월 29일 지금은 루쉰(魯迅)공원으로 불리는 당시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戰勝)축하 행사 때 윤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투척해 시라가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대장) 등을 처단하자 중국인들이 열광했다.

 윤 관장은 “시라가와 대장이 당시에 입었던 피 묻은 셔츠를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기념관인 유슈칸(遊就館)에 전시해 침략 전쟁의 범죄자를 군신(軍神)으로 섬기고 극우 일본인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本信行)가 2012년 일본 가나자와(金澤)에 있는 ‘윤봉길의사순국기념비’ 앞에 말뚝 테러를 저질렀다”며 “평화를 위협한 세력에 맞선 윤 의사의 싸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카인 내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함께 “윤 의사가 의거했던 상하이에서 시 주석이 2007년 당 서기로 일했기에 두 분은 상하이를 매개로 인연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시 주석에게 두 가지를 건의했다. 94년 상하이 루쉰공원에 세운 정자의 현판이 매정(梅亭)에서 매헌으로 한 번 바뀌었는데 ‘윤봉길기념관’으로 정확하게 바로잡아 달라는 호소가 첫째다. 정자는 세웠지만 일본의 반발을 의식한 중국 측이 윤 의사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 윤 의사와 무관한 매정이란 엉뚱한 현판을 달았다. 윤 의사의 호를 따서 매헌으로 바꿨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매화나무 정자’로 인식하고 한국인들도 잘 모른다고 윤 관장은 설명했다.

 윤 관장은 또 “98년 건립한 의거 현장 표지석인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비’가 실제 의거가 이뤄진 지점에서 80m 떨어진 곳에 잘못 세워져 있으니 제 위치로 옮겨달라”면서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계속되는 루쉰공원의 시설물 개·보수 공사를 계기로 숙원을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윤 관장은 시 주석이 연내에 방한할 경우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과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한 윤봉길의사기념관 방문도 제안했다.

시진핑에 띄우는 윤봉길 조카의 편지 전문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힘 쓰시는 시 주석께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역사의 진실 앞에 고개 숙이고 반성하기는커녕 침략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망동을 저지른 아베는 전 세계인 모두가 함께 규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시 주석께서 한반도와 중국 대륙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대한민국의 '항일 영웅'이신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 기념관을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 의거 현장에 건립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대표적인 항일영웅이 한 분 더 있습니다.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년) 의사입니다. 저는 윤 의사의 조카입니다. 윤의사의 친동생인 윤남의(尹南儀)선생이 저의 부친입니다.
1932년 1월 28일 일본군이 중국 상하이(上海)를 침략하고, 지금은 루쉰(魯迅)공원으로 불리는 당시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4월 29일 일왕의 생일축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전승(戰勝)축하 행사를 했습니다. 윤의사는 그날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침략전쟁 범죄자 시라가와 요시노리(白川義則)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대장),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츠구(河端貞次) 등을 처단했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1936년 1월 29일 중국 공산당이 프랑스 파리에서 간행한 구국시보(救國時報)는 윤 의사를 ‘상하이 보위전(保衛戰) 순국열사 명단’에 올려 보도했습니다.1989년 상하이시당위원회가 발행한 '상하이 인민혁명사 화책(畵冊)’에도 윤 의사 의거를 크게 기록했습니다.
윤 의사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상하이를 보위한 중국의 인민영웅이기도 한 것입니다.

윤 의사는 중국 광둥(廣東)인들의 영웅이기도 합니다.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군이 1932년 1월 28일 상하이를 침공하자 당시 상하이 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제19로(路)군은 일본군에 맞서 쑹후(淞?·상하이 일대)항전을 벌였습니다. 3월3일 전투가 중지될 때까지 계속된 제1차 상하이사변에서 중국인들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19로군은 광둥 출신 중국인들로 편성된 부대였다고 합니다. 19로군은 항전 동안 3만명의 부대원 중에서 장교 120명, 사병 2298명이 전사했습니다. 131명이 실종되고 수천명이 부상해 인명피해가 1만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4월29일)는 쑹후 항전에서 중국 19로군이 큰 희생을 치른 직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당시 광둥인들은 한국인 윤봉길 의사가 자신들의 한을 대신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흠모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이 때문에 광둥 인민들은 19로군의 쑹후 항전을 기념할 때마다 윤의사 의거를 함께 기념하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2년 1월 28일 광둥성에 있는 ‘19로군 쑹후 항일 진망장사능원(陳亡將士陵園)’에서 거행된 쑹후 항전 70주년 기념식 때 윤 의사 의거 사진도 함께 전시해 윤 의사를 추모했습니다. 당시 행사를 기념해 발간한 ‘19로군 1.28 쑹후 항전 70주년 기념책’ 에서 ‘일본침략군 두목들을 치욕스럽게 단상에서 끌어내린 장면’이라는 제목으로 5장의 사진을 실어 윤 의사의 장거를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윤 의사 의거는 한국인의 기념비적인 장거일 뿐 아니라 동시에 중국인들에게도 기념비적인 의거인 것입니다.

시주석님,
한·중 수교(1992년 8월24일)이전인 1989년 3월 8일 윤의사의 동생이자 저의 부친인 윤남의 윤의사의 친동생이자 저의 부친인 윤남의(尹南儀)선생이 1932년 윤 의사 의거 이후 처음으로 훙커우공원(1988년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뀜)을 찾아갔습니다.당시 루쉰 공원 어디에도 윤의사의 의거와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부친은 공원을 한 바퀴 돌다 평범하고 납작한 큰 돌 하나를 힘겹게 집어 들고서 "이 돌은 윤 의사의 보배로운 핏자국(함성)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부친은 이 돌을 형님인 윤의사의 분신처럼 소중히 가슴에 안고 호텔로 가져가 깨끗하게 씻었고 "윤 의사의 혼이 깃들어 있는 돌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당시 이 모습을 보고 안내하던 상하이 시 정부 양신화(楊新華)부처장 등이 크게 감명받았고 지금 그 돌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매헌기념관에 상설 전시중입니다.
당시 방문을 계기로 의거현장기념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1994년 4월 기념정자 ‘매정(梅亭)’이 건립되었습니다. 이때 중국은 중국인이 사랑하는 매화나무를 많이 심은 ‘매원(梅園)’이라는 조그마한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 안에 '매정(梅亭)'이라는 정자를 건립했습니다. 그러나 '매정'에는 윤봉길 의거가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측은 "윤 의사와 직접 관계 없는 정자 이름 '매정'을 윤 의사의 호 매헌(梅軒)을 넣어 ‘매헌정(梅軒亭)’으로라도 바꿔달라"고 중국측에 여러차례 요구했습니다. 그때마다 중국 측은 "정(亭)과 헌(軒)이 중국어로 모두 ‘건물’이라는 뜻이어서 '매헌정(梅軒亭)'으로 쓰면 글자가 겹친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한국 측은 "매헌은 고유명사"라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2009년 3월17일 현재의 이름인 ‘매헌(梅軒)'이란 현판이 내걸렸습니다.
그러나 공원을 찾는 중국인들이 보면 '매정'이든 '매헌'이든 '매화나무 정원에 있는 정자'로만 비칠 뿐 어디에도 윤봉길의사의 의거 흔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조차도 윤 의사의 호가 '매헌'이란 사실을 잘 몰라서 루쉰공원을 찾아가도 이 정자가 무슨 정자인지 누군가 별도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본인이 듣기에 상하이 시 정부는 루쉰공원의 모든 시설물에 대한 개보수 공사를 2013년 8월말부터 1년간 진행하고 있습니다.이를 계기로 정자 이름이라도 ‘윤봉길관’ 또는 ‘윤봉길기념관’등으로 바로잡는 것이 윤 의사의 후손들과 뜻있는 한국인들의 숙원입니다.
매원 입구에 1998년 건립한 의거현장 표지석('尹奉吉義士 生涯事跡碑')도 실제 의거 지점에서 약 80m 떨어진 곳에 잘못 세워져 있습니다. 윤의사 의거 지점 바로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책무일 것입니다.

시주석님,
윤의사 의거 이후 8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중·일 관계도 과거보다는 많이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의 정치인들과 극우군국주의세력들이 과거사의 진실에 눈 감고 역사 앞에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한·중·일 관계의 미래에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본인도 시대역행적인 일본의 도발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협한 세력에 맞선 윤 의사의 싸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카인 제가 그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극우 일본인이 2012년 서울 시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소녀상과 일본 가나자와(金澤)에 있는 '윤봉길의사순국기념비' 앞에 말뚝테러를 저질렀습니다.그는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란 자입니다. 그는 독도(獨島·일본명 竹島)는 일본 영토라는 말뚝을 설치했고, 위안부는 매춘부이고, 윤봉길 의사는 테러범이라고 망언을 자행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 비핵3원칙 폐기, 자위대의 정규군화를 주장해온 극우세력입니다.
본인은 2012년 10월 스즈키를 한국 법원에 고소해 민사소송은 이미 승소했고 형사소송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2011년 12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 문에 불을 지른 당시 37세의 중국인 류창(劉强)의 인도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2012년에 서로 자국으로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당시 본인은 “류창의 외할머니는 일본군에 끌려간 한국국적의 위안부였고, 외할아버지는 항일운동을 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그의 중국인 할아버지는 항일 신사군(新四軍)에서 연대장을 지냈으므로 항일 전사의 후예인 류창은 단순한 형사범이 아니고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 맞서 싸운 저항 운동가이니 류창을 중국으로 인도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다행히 류창은 2013년 한국 법원 결정에 따라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주석님,
본인은 루쉰공원에 기념정자가 건립된 이후 매년 봄이면 그 곳에서 거행된 의거기념식을 주관하며 한·중 우호협력을 위해 나름대로 힘써왔습니다.
올해 4월 29일 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82주년을 맞아 이날 상하이시 훙커우 구(區)와 한국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梅軒 尹奉吉義士紀念事業會)'가 공동으로 의거기념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
본인은 올해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4월 27일 출국해 29일 귀국할 예정입니다. 본인은 이번 기념식장에 류창을 초대하기 위해 연락처를 수소문 중입니다. 윤 의사가 처단한 시라가와 대장이 당시에 입었던 피묻은 셔츠를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기념관인 유슈칸(遊就館)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침략 전쟁의 범죄자인 시라가와를 군신(軍神)으로 섬기는 야스쿠니 신사를 응징한 류창을 만나 감사를 표시하고 그의 할아버지 동상도 함께 참배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시주석님,
시 주석께서는 윤의사가 의거했던 상하이시에서 2007년에 당서기로 일하셨습니다. 상하이를 매개로 윤의사와 시주석은 인연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거 기념일을 맞아 윤의사를 기념하는 휘호(揮毫)를 직접 써 주시면 서울시 서초구 매헌로에 있는 매헌기념관에 영구히 보관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휘호 문구(記念 尹奉吉義士 上海保衛戰 殉國烈士 梅軒 尹奉吉 流芳百世)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해 성공적으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시주석께서 방한하실 것이란 언론 보도를 봤습니다. 방한하실 경우 바쁜 일정에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 임시정부 요인인 김구·이동녕·조성환·차이석의 묘, 동양평화론을 쓴 안중근의 허묘) 또는 서울 서초구의 윤봉길의사기념관 방문을 희망합니다.
한국과 중국 국민의 마음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양국의 우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반가운 답신이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다시 한번 시 주석의 올바른 역사 의식에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4월3일
대한민국 서울시 서초구 매헌로 99
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매헌기념관 관장 윤주(尹洲) 드림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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