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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전문기자의 차이 나는 차이나] 시진핑 '샤오츠 정치' … 13억 마음 채운 3500원 주석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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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내 이미지는 크게 세 가지다. 부패 척결의 투사, 개혁의 선봉장, 그리고 중화 ‘샤오츠(小吃·간단한 먹거리)’의 대변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미지에서 화약 냄새가 물씬 난다고 하면 세 번째는 푸근함 그 자체다. 서민과 어울려 값싼 식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중국은 열광한다. 13억의 1인자라는 아득한 높이를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샤오츠 정치학’이 추구하는 것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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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먹거리 정치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그가 당 총서기에 오른 2012년 말부터다. 12월 29일 시진핑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를 뚫고 민정 시찰을 떠났다. 베이징에서 약 300㎞ 떨어진 허베이(河北)성의 푸핑(阜平)현. 중국 내 600여 개에 달하는 빈곤 현 중 하나다. 시진핑은 이곳에서 “반점 하나만 봐도 표범임을 알 수 있다(窺一斑知全豹)”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차로 세 시간 반 거리만 달려도 중국의 참된 빈곤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현지 간부들에게 “믿음이 있으면 황토도 금이 될 수 있다”며 빈곤 퇴치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주문하고 또 극빈층의 삶을 돌아봤다. 그러나 정작 중국 민간의 관심을 모은 건 시진핑의 식단이었다. ‘사채일탕(四菜一湯·네 가지 반찬에 국 한 그릇)’. 시진핑이 그날 먹은 건 현지인들이 흔히 먹는 채소와 닭고기볶음 등이었다. 물론 술은 없었다. 이후 이 사채일탕은 시진핑의 지방 시찰 때 표준 식단이 됐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의 만두가게에 들어가 줄을 서서 만두를 사 먹는 시진핑 주석. [중앙포토]

 시진핑의 검소한 식사에 중국 대륙이 열광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지난해 12월 28일 점심 무렵 베이징 웨탄(月壇)공원 부근에 위치한 칭펑(慶豊) 만두집에 시진핑이 불쑥 나타났다. 시진핑은 줄을 서지 말고 주문하라는 주인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가 주문한 것은 시민들의 추천에 따라 돼지고기와 파가 속으로 들어간 만두, 그리고 간볶음과 갓요리였다. 모두 21위안(약 3560원). 이는 이후 ‘주석(主席) 세트’라는 이름으로 칭펑 만두집의 ‘대박’ 메뉴가 됐다. 시진핑은 만두집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점심을 즐겼다. 이 모습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타고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시진핑의 샤오츠 정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초 네이멍구의 변방 초소를 방문했을 때 시진핑의 접시 위에는 중국인들이 흔히 먹는 토마토에 달걀을 풀어 볶은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2월 중순 대만 국민당의 원로 롄잔(連戰)과 회견한 뒤 함께 식사할 때는 고향 산시(陝西)성의 대표적 서민 음식인 양고기 국물에 넣은 만두가 등장했다. 시진핑에게 ‘중화 샤오츠의 홍보대사’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중순 시진핑은 중국 지방관리의 모범이라 불리는 자오위루(焦裕綠)가 근무했던 허난(河南)성의 란카오(蘭考)현을 찾았다. 자오는 빈곤 마을인 란카오현을 위해 악전고투하다 간암에 걸려 50년 전 세상을 떠난 혁명 열사다. 자오위루 기념관을 찾아 “배우러 왔다”고 토로한 시진핑은 란카오현에 머무는 동안 또 한번 샤오츠 정치를 선보였다. 허난성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15위안짜리 대중음식 ‘후이몐(<71F4>面·면 폭이 넓은 국수)’을 먹은 것이다. 한 농가의 문 앞에 서서 땅콩을 먹는 장면도 보였다. 시진핑이 3월 17~18일 자오위루 간부학원 기숙사에 체류하며 지불한 전체 식비는 160위안에 불과했다. 그의 방에 꽃이나 과일을 두는 것이 불허된 것은 불문가지다.

 시진핑이 서민 음식을 즐기는 것은 초급 관리 때부터 다져진 습관이다. 그가 관리로 첫 발을 내디뎠던 허베이성 정딩(正定)현의 옛 관리들은 시진핑과 함께 밥 먹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 같이 큰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데 시진핑은 왼손 엄지부터 중지까지 세 손가락으론 밥그릇을 들고 나머지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으론 반찬 그릇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놀려 밥을 먹는데 바람이 불어 흙먼지나 나뭇잎이 날려 밥그릇으로 떨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시진핑의 샤오츠 행보에 대해 ‘쇼(show·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은 지난해 말 칭펑 만두집을 들렀을 때 “오전에 현지 순시를 나갔다가 점심 때가 돼서 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칭펑 만두집 부근의 주차장 관리인은 그날 아침 6시부터 ‘차 세워 둘 공간을 확보해 두라’는 교통관리 부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팁으로 시진핑 밥값의 10배가량이나 되는 200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연출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시진핑의 샤오츠 정치가 쇼인 것은 맞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 쇼가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냐의 여부다. 이제까지 시진핑의 먹거리 정치는 중국인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이 점에선 분명 성공이다.

 시진핑의 샤오츠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무얼까.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금언이다. 그런 중국에서 관리는 흔히 육식자(肉食者)로 통한다. 서민이 채소로 허기를 채울 때 관리는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관리와 서민은 먹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시진핑은 이런 관념을 깨려 하고 있다. 서민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가 추진하는 공산당과 서민의 거리를 좁히려는 의도에서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이 물(水)이면 당원은 고기(魚)라고 말한다. 인민의 지지 없이 당이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인민과 함께 먹는 걸 강조하는 것은 내치(內治)에서 당원과 인민이 한 집에 같이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식구(食口)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외교(外交)로 확장되면 동반자 외교다. 중국에서 동반자는 ‘훠반(<4F19>伴)’이라고 말한다. 이는 중국 고대 병제(兵制)에서 공동으로 밥을 지어먹던 동료를 뜻한다.

 시진핑의 샤오츠 정치학에는 이처럼 인간 본연의 정(情)에 호소하려는 힘이 실려 있다. 국제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 시진핑이 첫날 만찬에 이어 이튿날 또다시 파격적으로 오찬을 주재하는 등 두 번의 밥 먹는 기회를 만든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상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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