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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전자부문 버리고 건강관리 집중 … 트렌드 읽고 정체성까지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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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891년 창업한 네덜란드계 글로벌 기업인 로열필립스전자(필립스)는 반도체·전자 분야의 강자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두 분야의 매출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필립스는 2006년 주력이던 반도체 부문을 83억 유로(12조원)에 사모펀드에 넘겼다. 수년째 불안정한 수익성을 보인 부품·정보기술(IT) 서비스 등도 모두 줄였다. 대신 헬스케어·조명·소형가전 세 가지 영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필립스는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 전자업체 중 하나였다. 백열전구부터 TV·진공청소기·커피메이커·면도기 등 진출한 영역은 많았지만 성과는 갈수록 하락세였다. 2000년대 초반 매출은 15년 전에 비해 30%나 줄었다. 반도체 산업 주도권은 이미 아시아로 넘어갔다. 고민하던 필립스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메가트렌드에 주목했다. 건강 관리 비용 상승과 고령화 현상 등이다.

 필립스는 몸집만 비대한 다국적 전자회사에서 벗어나 ‘가정용 건강관리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정체성을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주력 분야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신제품은 달라진 필립스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2011년 출시한 치간 세정기 ‘에어플로스’와 최근 선보인 기름이 필요 없는 튀김기 ‘에어프라이어’가 대표적이다.

 필립스는 많은 사람이 치아 건강을 위해 치실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잘하지 않는다는 데 주목했다. 과학자들로 구성된 ‘혁신연구부서’를 통해 물 한 스푼만 넣으면 이를 강하게 분사해 이 사이사이를 닦아주는 에어플로스를 개발했다. 독일의 주요 산업박람회를 통해 공개되면서 ‘구강 관리 가전’이라는 영역을 창출했다. 에어프라이어 역시 식생활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비만에 관심은 높지만 여전히 튀긴 음식의 유혹을 해결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필립스는 뜨거운 공기 순환으로 급속히 재료를 튀기는 특허 기술을 도입했다.

 필립스가 읽은 메가트렌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처 방식은 달랐다. 트렌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고통스럽고도 과감한 정체성 변화를 실행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트렌드를 제일 먼저 읽었다고 퍼스트 펭귄은 아니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사명에서 아예 ‘전자’를 떼버리고 ‘로열 필립스’로 바꿨다. 지난 수년간 변화의 결과 더 이상 전자기업이 아니라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안동순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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