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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서는 대사님

중앙일보

입력

“미술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습니다. 중동 부국인 카타르에서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아랍어를 할 줄 아는 분이랑 먼저 연결이 돼야지 사업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랍권에 IT가 좀 낙후돼 있는데,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네요. 전통적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에 좀 밀리고 있거든요. 아주 잘 맞아 떨어집니다.”

3일 오전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 카타르라는 명패가 붙은 부스 안에서 현지 시장 진출을 원하는 중소기업 씨아이큐빅 진영일 대표와 정기종 주카타르 한국 대사가 머리를 맞댔다. 진 대표가 “카타르의 전시 수요나 현황을 잘 몰라서 거기 계신 한국분이라도 좀 소개받고 싶다”고 하자 정 대사가 “이렇게 해보자”라며 아이디어를 냈다. 카타르의 전시회 프로모션을 도맡아 하는 레바논계 회사 두 세곳을 직접 연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진 대표는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부스를 나섰다.

이날 행사는 외교부와 경제 4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사와 기업인의 1대1 상담회였다. 각국에 주재하는 대사들이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것을 계기로 해외 진출을 원하는 기업인들과 만날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상담회는 올해가 벌써 여섯번째로, 현지의 생생한 정보를 원하는 기업인들의 호응이 높아 매해 500~600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올해는 260여개 기업 대표가 대사 114명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 건수는 600여건에 이르렀다. 빼곡하게 설치된 100여개의 부스에는 종일 기업인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었다.

특히 미개척 시장인데다 법·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많은 신흥국 대사들에게 상담이 집중적으로 몰렸다. 가나·가봉·나이지리아·리비아·세네갈·알제리·앙골라·에티오피아·우간다·카타르·케냐 등 아프리카 중동 지역이 인기가 많았다. 일부 대사들은 일정상 모든 면담을 소화하지 못했을 정도다.

대사와의 1대1 상담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용기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지난해 행사에서 주호주 대사에게 “호주 기업과 아프리카에 공동 사업 진출을 하려는데 이 기업의 신용도가 어떤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에 주호주 대사관이 해당 기업 정보를 조사했는데, 등록해놓은 주소는 엉터리였고 전화도 먹통이었다. 대사관은 즉시 이 사실을 알렸고, A사는 덕분에 수출 사기를 피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 총영사관은 지난해 상담회에서 자동차 부품 납품사업 참여를 원한다고 밝힌 금속 가공업체 B사의 시장 진출을 위해 ‘보증’도 서줬다. 히로시마 기관과 기업에 공식 서한을 보내 B사가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는 뜻을 대신 전달해준 것이다. B사는 현재 히로시마 기업 두 곳과 업무 협의를 진행 중이다.

재외공관이 우리 기업 해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 경제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날 격려차 상담회 현장을 찾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통세관 분야나 미수금 회수, 투자 진출 등 재외공관이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며 “기업인들이 공관장 활동을 하나의 소스로 보고, 잘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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