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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암허스트, 나폴레옹 그리고 세인트헬레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하순 프랑스를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한 강연에서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친근하고 문명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은 잠자는 사자이므로 깨어나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라는 나폴레옹1세의 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나폴레옹1세(1769-1821)는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영국 오스트리아 등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점령되고 강제 퇴위되어 1815년 4월 지중해의 엘바 섬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 영국에 대패,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1815년 10월로 엘바 섬 탈출 8개월만이었다.

세인트헬레나는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섬으로 해안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울릉도와 지형이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는 약간 더 크며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해안으로부터 2800km 떨어져 있다. 수에즈운하가 개통(1869)되기 전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항로의 요충으로 물과 석탄의 보급기지였다.

나폴레옹이 대서양의 절해고도에 유배되고 유럽은 오래 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영국의 동인도회사(EIC)는 본국 정부에게 중국(淸)과 통상확대를 요구했다. 광저우(廣州) 공행(公行)에 의한 제한적 통상에 불만이 많았다. 영국정부는 윌리암 암허스트(1773-1857)를 중국파견 대사로 임명 통상확대 교섭에 나섰다.

1816년 2월 영국을 출발한 암허스트 대사일행은 7월에 광저우(廣州) 8월에 수도 베이징(北京)의 입구인 통저우(通州)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암허스트 대사는 황제(嘉慶帝)알현에 요구되는 “코우토우”(叩頭之禮)를 굴욕적이라고 거부하였다. 23년 전 조지 매카트니(1737-1806) 대사가 “코우토우”를 거부 당시 황제(乾隆帝)를 만나지 못했던 전례를 따랐다. 암허스트 대사는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느라고 결국 통상교섭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귀국 길에 오르게 되었다.

암허스트 대사 일행이 탄 배는 1817년 1월 광저우를 출발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보급을 받기 위해 세인트헬레나 섬에 기항하였다. 대사는 이 기회에 나폴레옹1세를 면담코자 그가 유폐되어 있는 롱우드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암허스트 대사는 중국에 다녀 온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은 듣던 것과 달리 무능한 거인처럼 보인다고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나폴레옹은 중국에 갔다면 현지 의전에 따라 “코우토우”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중국은 잠자는 사자이므로 깨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아편전쟁(1840-1842)을 통해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 난 사자는 세계를 진동시키기는커녕 오랜 기간 수난과 상처를 입고 이제 우뚝 일어서려고(?起) 하고 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 난 사자가 주변을 위협하지 않고 평화적이고 친근감을 주는 문명적(文明的)굴기가 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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