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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살려준 대가, 네이비실 최악의 참사 … 당시 선택 후회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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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론 서바이버’에서 아프간 산악지대에 침투한 네이비실 소속의 마커스 러트렐 중사(마크 월버그)가 목표물을 응시하고 있다. 마크 월버그는 “이 영화는 전쟁이 아닌, 인간의 의지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아래 사진은 2010년 러트렐이 생명의 은인인 아프간인 굴랍(오른쪽)을 만나 얼싸안고 있는 모습. [UPI 코리아]

2005년 6월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네 명의 네이비실(미 해군특수부대) 대원이 정찰 임무를 띠고 산악지대에 투입됐다. 뜻밖의 변수로 위치가 노출된 이들은 중무장한 수백명의 탈레반과 교전을 벌이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도와주러 온 대원 16명도 헬기가 탈레반의 RPG 로켓공격으로 추락하면서 전원 사망했다. 네이비실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기적은 피어났다.

 모두 전사한 줄 알았던 정찰조 중 한 명이 반(反) 탈레반 정서의 아프간 부족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미군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구조작전을 펼쳐 대원을 구출했다. 이런 영화 같은 실화는 ‘론 서바이버’(2일 개봉, 피터 버그 감독)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올 초 미국 개봉시 ‘겨울왕국’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기적적인 생환의 주인공 마커스 러트렐(39) 전 네이비실 대원을 이메일로 만났다.

 - 전우들을 위해 문신까지 했다고 들었다.

 “오른쪽 팔에 세 명의 팀원들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왼쪽 팔의 문신은 헬기추락으로 사망한 대원들을 위한 것이다.”

 - 테크니컬 어드바이저로서 영화 제작에 참여했는데, 어떤 역할을 했나.

 “배우들의 훈련을 맡았다. 네이비실 대원들이 쓰지 않는, 어색한 대사도 바로잡았다.”

 러트렐 역을 맡은 배우 마크 월버그는 영화주간지 magazine M과의 인터뷰에서 “전사한 대원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힘든 네이비실 훈련을 버텨냈다”고 말했다.

 - 탈레반이 득실대는 산악지대에 대원 네 명만 침투한 건 무모한 작전이라는 비판도 있다.

‘론 서바이버’의 실제인물인 전 네이비실 대원 마커스 러트렐(오른쪽)과 그를 연기한 마크 월버그.

 “네이비실은 언제나 명령에 따를 뿐이다. 작전의 위험성이나 전략적 의미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 영화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나.

 “영화에선 내가 아군에 구출되자마자 헬기에서 심장정지 상태에 빠지는데, 실제론 그 정도는 아니었다. 탈레반과의 교전에서 여러 군데 관통상을 입었고, 척추에 금이 갔다. RPG 로켓의 파편이 박힌 게 가장 고통스러웠다. 영화에 탈레반의 총격을 피하기 위해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살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 ‘굴랍’이라는 아프간 남자가 중상을 입은 당신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이유는 무엇이었나.

 “‘쫓기는 약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줘야 한다’는 부족의 전통 때문이었다. 탈레반이 냄새를 맡고 마을을 포위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나를 내주지 않았다. 내가 구출된 뒤 굴랍과 그의 가족은 탈레반의 위협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다.”

 - 작전 당시 우연히 마주친 아프간 양치기들을 풀어준 것 때문에 탈레반의 추격을 받게 됐는데, 후회는 없나.

 “살려주면 우리의 존재를 탈레반에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고심했다. 격론 끝에 그들을 살려줬다. 작전상 위험을 줄이는 것보다 인도적 원칙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그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후회는 없다. 후회한다면 전우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지지 않겠나. 만약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면, 크게 후회했을 것 같다.”

 - ‘론 서바이버’ 재단을 만든 이유는 뭔가.

 “전사한 대원들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그때 얘기를 담은 책 『아프간, 단 한 명의 생환』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책과 영화로 얻은 수익금으로 아프간 참전 부상병과 가족을 돕는 재단을 만들었다. 그때 일이 떠올라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나처럼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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