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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57센트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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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도 모르겠다.”

 1일(현지시간) 미 의회 청문회에 선 제너럴모터스(GM)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의 고백이다. 그는 GM이 사소한 부품 결함을 10년씩이나 바로잡지 않아 최소 13명의 인명 피해를 낸 이유를 의원들이 따져 묻자 이같이 답했다.

 GM의 늑장 리콜은 CEO조차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했을 정도로 미스터리다. GM 기술진이 쉐보레 코발트 등 소형 모델의 점화장치 하자를 인지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바라 CEO에게 보고된 것은 올 1월 31일이었다.

 해당 부품 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공화당 소속 다이애나 드젯 의원은 2005년 GM 엔지니어들이 문제가 된 점화장치 결함에 대한 해결책을 보고했으나 회사가 묵살했다고 지적하면서 “GM이 제출한 자료를 봐도 (문제가 된) 부품 교체에 드는 비용은 고작 57센트(600원)였다”고 질책했다. 나사를 풀고 새 스위치로 바꿔 다는 데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함은 은폐됐고, 리콜은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부품 결함을 인정한 GM은 점화장치 결함 차량 260만 대를 비롯해 600만 대를 리콜했다. 앞으로 피해 신고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한때 세계 1위 자동차회사 GM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가들은 GM의 기업문화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첫째는 GM의 관료주의다. 2009년 파산 전까지 GM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이었다. 조직은 비대하고 복잡해졌다. 서류작업과 위원회가 넘쳐났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뱀이 나오면 뱀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GM에선 뱀 전문가를 고용하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수년 동안 뱀 잡는 방안을 토론한다”고 비꼬았을 정도다. 어느새 상급자에게 ‘나쁜 뉴스(bad news)’를 솔직하게 보고하는 것을 꺼리는 문화가 똬리를 틀었다. GM에 관한 책을 저술한 컨설턴트 마리안 켈러는 “우수한 직원들조차 조직에 순응해야 보상받는 시스템에 순화돼 갔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비용 중시 문화다. 2004년 GM 기술진은 결함을 해결할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덮어버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GM의 운신 폭을 더 좁혔다.

미국 정부와 납세자들에게 구제금융을 애걸하고 다니던 GM 처지에 리콜 카드를 선뜻 꺼내긴 어려웠다. 바라 CEO조차 청문회에서 “(과거의 GM은) 비용 중시 문화에 젖어 있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비용 절감이 고객의 안전과 품질을 압도했던 셈이다.

 GM의 늑장 리콜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다. GM은 앞으로 수조원대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2010년 차량 급가속 문제로 수백만 대를 리콜한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도요타는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11억 달러를 지불했고, 기소유예 조건으로 미 법무부와 12억 달러의 벌금에 합의했다. GM은 훨씬 혹독한 상황이 예상된다. 오랜 기간 결함을 은폐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나쁜 뉴스를 감추고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대처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GM 리콜 사태가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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