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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서 뜨면 1년치 장사" … 황금시간 뒷거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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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9월, 6개월째 홈쇼핑을 통해 여성용 화장품을 판매해 오던 중소기업 L사는 뜻하지 않은 일에 부닥쳤다. 홈쇼핑업체에서 시간대를 오전 9시에서 오전 6시대로 변경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온 것이다. L사 측은 “방송 때마다 완판돼 인기가 있는 제품인 데다 수수료를 판매액의 30% 가까이 내는데 말이 되느냐”고 따졌지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이전처럼 황금시간대에 물건을 팔려면 10% 정도의 수수료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L사 관계자는 “다른 유통 경로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른 아침에 방송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자금력이 없는 업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황금시간대에 물건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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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직원들 역시 L사가 겪었던 상황처럼 황금시간대 방송 권한을 틀어쥐고 납품업체들로부터 금품 등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황금시간대는 방송시청률이 가장 좋은 시간을 일컫는다. 평일을 기준으로 보면 구매력 큰 주부들이 TV 시청을 하는 오전 8~11시, 오후 8~11시가 여기에 속한다. 실제 국내 한 홈쇼핑업체가 주문 액수를 분석한 결과 평일의 경우 오후 10∼11시 주문 금액이 6억3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가장 적었던 오전 1~2시에 들어온 주문액 1억6000만원(재방송시간대인 오전 2~6시 제외)의 4배 수준이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일요일 오후 5∼7시를 최고의 황금시간대로 친다. 보는 사람이 많아야 물건을 팔 기회가 많아지는 홈쇼핑의 특성상 이 시간에 진입하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신생 중소기업이거나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려는 유통업자들은 한 번의 방송으로 ‘대박’이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시간대에 방송을 내보내려고 애쓴다. 김형락 중소기업중앙회 조합진흥부장은 “홈쇼핑에서 흥행에 성공하면 몇 번 방송 안 해도 오프라인 매장의 1년 판매량을 넘어설 수 있어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내고 싶어 한다” 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의 비리가 드러난 건 이번만이 아니다. 검찰은 2년 전에도 롯데홈쇼핑을 비롯해 국내 홈쇼핑 업체 4곳의 상품기획자(MD) 등 27명을 처벌한 바 있다. 당시나 최근 검찰수사에서나 과도한 MD의 권한이 문제가 됐다. 상품기획 단계에서부터 방송편성 회의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수사에서 드러났듯 MD의 상급자들까지 공모한다면 이를 제지할 방법이 거의 없다. 홈쇼핑 업체들은 하나같이 자체 감시시스템을 강화했다고 했다. NS홈쇼핑은 감사실을 신설했다. 제보자가 감사실장과 직접 연결되고 감사실에서 사장에게 직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대홈쇼핑은 감사 횟수와 윤리 교육을 1년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급자들까지 공모한 것을 보면 내부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홈쇼핑 종사자들의 윤리의식에 구멍이 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 세무조사 강화 등 외부감시 기능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가상납 의혹 수사=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2010년 서울 양평동에 롯데홈쇼핑 신사옥을 짓는 과정에서 법인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신헌(60) 롯데백화점 사장을 금명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전날 구속한 이모(50) 방송본부장, 김모(50) 고객지원부문장이 신사옥 공사 중 최첨단 스튜디오 방송설비 및 인테리어 공사비를 부풀려 회사 돈 6억5000만원을 빼돌렸고 이 중 2억원가량이 신 사장에게 흘러간 정황을 파악했다. 검찰은 또 이모(50) 전 방송부문장 등 별도로 구속된 MD 두 명이 홈쇼핑 납품업체 6곳에서 ‘황금시간 편성’ 부탁을 받고 약 12억원을 챙기는 과정에서도 상납이 있었는지 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롯데그룹 차원의 비자금이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병주·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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