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혹은 덮고 제보자 해고한 서울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해 6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김태희(당시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대형 스크린에 한 장의 사진을 띄웠다. 웨딩대행업체인 E업체의 사무실 모습이었다. 어인 일인지 직원은 보이지 않고 책상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편에는 종이박스 10여 개가 쌓여 있었다.

 김 의원은 “세종문화회관이 대행사로 선정한 E업체는 Y웨딩업체의 창고를 주소지로 해서 만든 페이퍼컴퍼니”라고 주장했다. 또 “심지어 Y업체는 E업체와 입찰에서 경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세종문화회관 직원 A씨의 내부 제보가 바탕이 됐다.

 E업체의 대표는 세종문화회관 웨딩 담당자로 일하다 입찰 6개월 전 퇴사한 김모씨의 어머니였다. 김 의원은 “세종문화회관 내부 담당자들과 E업체, Y업체, 심사위원이 공모한 정황이 있으므로 수사기관에 의뢰해 통화내역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의원에게 직접 자료를 요청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산하기관이라서 최종 감독권이 시장에게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 취재 결과 9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입찰비리 관련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시 조사에 나섰던 서울시 조사과 관계자는 “행정기관으로서 조사에 한계가 있어 지난해 8월 이 건을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겼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민간기업 간 담합을 조사하는 기관이다. 서울시 산하인 세종문화회관 내부 직원과 E업체 간 유착관계라는 사안의 성격을 도외시한 결정이었다. 공정위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공문을 받았으나 조사를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감사원도 감사에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착수하지는 않았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입찰비리는 수사기관을 통해 통화내역을 조사하는 게 상식”이라며 “통화기록 저장기간이 보통 1년인데 1년 넘게 시간을 끌었으니 이제 와서 수사가 잘 진행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공정위·감사원이 입찰비리 의혹에 대한 조사를 떠넘기기 하고 있는 사이 비리 의혹을 알린 A씨는 직장에서 해고됐다.

 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 6~9월 실시한 자체 감사를 통해 A씨가 법인카드로 본인 차량에 4차례 37만5000원 상당을 주유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사유로 면직 처분을 내렸다. 지나친 처분 아니냐는 지적에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이라 금액과 관계없이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A씨를 횡령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수사의뢰했다. A씨는 “홍보·마케팅 담당이라 외근이 잦았다”며 “법인 차량이 2대뿐이라 업무를 위해 개인 차량을 주로 이용했고 회계담당자에게 주유 영수증도 제출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경찰은 모든 법인카드 주유 내역이 업무와 연관 있다고 인정된다며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표적 감사 의혹이 일자 세종문화회관 측은 “감사는 웨딩입찰 건과 무관하게 외부인도 참여한 가운데 공정하게 진행됐다”며 부인했다.

 A씨는 현재 “면직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지방노동청에 부당해고 철회 심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서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