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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회, 70년대식 임금 호봉체계 성과 중심으로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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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공기업 내 안주하는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해 결국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변선구 기자]

지난달 30일 한국마사회(KRA) 노사가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을 위한 노사 간 합의서’에 서명했다. 500인 이상 공기업으론 처음이다. 합의서엔 기존 직원이나 노조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이 담겼다. 1인당 연간 919만원에 달하던 복리후생비는 547만원으로 47% 삭감된다. 노조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할 때는 회사 시설에 출입할 수 없다. 인사·노무·복지·감사 담당자 이외에 예산 담당자까지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게 했다. 노조가 3개(정규직 노조, 업무지원직 노조, 시간제 근무자 노조)나 되는 마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합의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 회사 노조는 공기업 개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현명관 마사회장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임직원이 현재의 경마산업을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공기업보다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으로 재탄생하려 했다. 그게 이른 시간 안에 합의를 이끌어낸 힘”이라는 것이다. 현 회장은 “이번 노사합의는 마사회의 재창립을 위한 첫 단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더 많은 개혁으로 조직의 체질을 확 바꾸겠다”는 그의 구상을 들었다.

 -방만경영 개선에 노조의 반발이 만만찮았을 텐데.

 “노조와 수없이 많이 만나 설득했다. 경마산업은 3년 전부터 매출이 정체될 정도로 위기다. 사행산업으로 낙인찍혀 이미지도 좋지 않다. 눈앞의 자녀 학자금이나 선물비가 줄어드는 것보다 국민에게 외면받으면 마사회의 설 자리 자체가 없어진다.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노조가 상급기관(한국노총)의 투쟁지침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선도적 제2도약을 하자는 회사 측의 뜻에 공감해줬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적자에 허덕이는 다른 공기업과 달리 마사회는 흑자를 내고, 사회에 기부도 많이 하는 곳이다. 직원들이 다소 억울해하진 않는가.

 “공기업 개혁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마사회 자체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복지혜택이 줄어드는 대신 교육기능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직원을 육성하는 형식으로 돌려줄 것이다.”

 -다른 후속 개혁 조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지난번 마사회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이 521대 1이었다. 이런 경쟁률을 뚫은 인재들이 공기업만 들어가면 경쟁력을 상실한다. 민간기업과 경쟁하면 공기업은 백전백패 한다. 도전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하면서 안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를 바꿔야 한다. 임금제도와 승진제도를 포함한 인사제도를 뜯어고쳐 경쟁력 확보를 독려할 생각이다. 호봉제 중심인 임금을 성과를 중시하는 직무·역할급으로 바꾼다. 같은 직급이라도 급여가 3배 이상 차이 나게 개선한다. 전문직과 행정직을 분리해 원장이나 팀장에 올라가지 못하는 수의사와 같은 전문직도 관리직과 같은 대우를 받게 할 것이다. 도전하고 성취하는 직원에게는 승진과 임금인상과 같은 포상을 충분히 할 방침이다. 승진시험은 전면 폐지한다. 시험에 통과하면 승진하고, 그 뒤엔 해이해지는 문화를 조장하는 인사제도는 1970년대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으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올해 안에 이 같은 개혁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마사회가 국민에게 다가가려면 내부 경쟁력 향상만으론 안 될 텐데.

 “국민에게 다가가 친근한 이미지를 줘야 한다. 과천경마공원을 자연생태계 테마공원과 어우러진 가족공원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장외발매소는 백화점 문화센터를 능가하는 지역주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지금 같은 장외발매소로는 ‘경마=사행산업’이란 공식을 깨기 힘들다. 올해 안에 장외발매소 1곳을 선정해 시범 실시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글=김기찬 선임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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