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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바람기 막아주는 약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내가 바람 안 피우는 약이 있다면서 그거 좀 처방 받아 먹으래요.”

필자의 외국인 환자 중 한 명인 J씨는 자신의 외도로 심각한 이혼위기에 처해 있다. 성공한 회사 중역으로 업무상 한국에 거주하면서 시작된 그의 외도는 결국 아내에게 들통 나 이혼소송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혼당하기 싫으면 제대로 치료 받으라는 아내의 요구에, 수소문 끝에 필자를 찾아온 J씨는 앉자마자 바람 안 피우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J씨의 외도가 너무 반복되다 보니 아내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바람 안 피우는 약’이라며 광고하는 문구들을 봤다. ‘외도 억제약’은 옥시토신이나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상업화시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나 바소프레신은 성(性) 반응과 관련이 있는 호르몬이다. 성적 수용성과 오르가슴을 상승시켜 성적 즐거움을 유발한다. ‘친밀감 호르몬’으로 통하는 옥시토신만큼 바소프레신은 남편·아버지의 역할을 강화시킨다. 성관계 도중 사정 반응이 일어날 때 혈액 속에서 바소프레신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암컷과 새끼들을 향한 강한 애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바소프레신은 옥시토신과 구조적·기능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학문적으론 인간의 사랑과 성생활에도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의 화학작용이 관여될 것으로 보이는 연구 결과가 제법 있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 떠도는 옥시토신 관련 물질을 실질적인 외도 방지나 부부간 애착 형성을 위해 사용하는 데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합성된 옥시토신은 위장관에서 쉽게 파괴되므로 주사나 비강(코 안) 스프레이로 투여된다. 그러나 반감기가 3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효과의 유지기간이 짧다. 충분한 양이 뇌혈관 ‘장벽’을 넘어 대뇌에 작용하기 힘들어 반짝 효과는 몰라도 장기간의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외도를 억제하려면 이런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좀 더 많이 분비될 때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은 옥시토신의 분비가 신기하게도 남녀 간의 부드러운 대화,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 세 배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이완, 여유로운 명상, 안마·마사지 등을 통해서도 옥시토신의 혈중 농도가 올라간다. 출산할 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옥시토신의 최대 상승은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성행위를 할 때 나타난다. 반면 애착이 없는 일회성 성행위나 성매매 등에선 그만한 뇌 반응이 유발되지 않아 옥시토신의 충분한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찾아 헤맨 노력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약 한 알로 상대를 사로잡거나 외도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게 하고 사랑을 영원히 유지시킬 수는 없다. 이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방법은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한 대화와 잦은 스킨십, 더 나아가 안정적인 성생활 그 자체에 있다. J씨의 외도는 방황하는 자신의 감정을 읽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친밀감을 되찾아가는 치료과정을 통해 해소됐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복잡 미묘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감정이지 약 한 알이나 그 어떤 충격파로 쉽게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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