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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한 한국 법조인들에 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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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역사 전쟁’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과거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대립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법률가가 있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중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맡아 중국 법원의 입장 전환을 이끌어 낸 캉젠(康健·61·사진)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 침략으로 인한 피해를 고발하고 일본의 법률적 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해 온 ‘역사 전문 변호사’다.

 캉 변호사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따른 피해자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일반 민·형사 사건을 주로 다루던 그는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 주최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의 여성 변호사가 도움을 청해왔어요. 위안부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인데 도와줄 수 없느냐고요. 중국에선 아직 ‘위안부’란 말이 없을 때였어요. 가해 국가의 변호사가 저렇게 열성적인데 피해국인 중국의 변호사인 내가 가만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거들게 됐죠.”

 그 이후 이뤄진 중국인 위안부들과의 만남은 변호사 캉젠의 행로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참혹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 법률가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가해자를 법정으로 불러 들이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나무판에 못을 박는 것처럼 가벼운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네요.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90년대부터 여러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일본 기업에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선 4건의 승소 판결을 얻어냈지만 번번이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의 장벽에 부딪혔다.

 “판결문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까지 나왔어요. 하지만 중국 정부가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하죠. 그럼 명백하게 개인이 받은 피해는 누가 구제해주나요.”

 중국 정부는 72년 일본과 수교하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배상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캉 변호사의 논리다.

 일본 법원의 한계에 부딪힌 그는 이번엔 중국 법원을 향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2000년 허베이 고등법원을 비롯, 중국 각지의 법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해 버린 탓이다. 이는 수교 당시의 청구권 포기와 일본과의 관계를 배려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지난달 처음으로 베이징 인민법원이 노동자 40명이 낸 소송을 받아들여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후 허베이성 탕샨 등 각지에서 비슷한 소송을 냈거나 내려는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어 캉 변호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국 법원의 유사 판례가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캉 변호사는 “한국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승소한 판결이 두 차례 있었는데, 우린 한국 법원의 판결문을 모두 구해 중국어로 번역해 읽었다”며 “한국 법원과 변호사들이 이 분야에서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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