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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식당' 중심 vs 범스…이런 메뉴, 어디서도 못 봤을 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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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외식업계에선 ‘집밥’이 트렌드다. 그런데 요즘 새로 문을 연 ‘집밥 식당’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모던하다. 그렇다고 한 끼에 몇 만원씩 받을 만큼 화려하진 않다. 셰프들의 나이는 젊다. 비록 몇 십 년째 지켜온 장인의 손맛은 없지만 이들에게도 무기는 있다. ‘아이디어’와 ‘좋은 식재료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 소개하는 ‘중심(中心)’과 ‘범스(BUMS)’는 바로 이런 새로운 집밥 컨셉트를 가장 충실히 또 먼저 시작한 식당들이다. 그것도 가장 트렌디한 동네 청담동과 이태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흥미로운 건 두 식당 모두 주인장은 음식을 전공하지 않은 남자들이라는 것. 공통점은 또 있다. 수년 간 외국 생활을 한 유학파들이다. 메뉴 중에 알 듯 모르를 듯한 이름의 음식이 꽤 있는 것도 같다. 모두 주인장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닮은 듯 다른 두 식당을 비교해 봤다.

중심(中心)
“칼국수 천국을 만드는 게 목표”

이태원 맥도날드 뒷골목에 눈에 띄는 간판이 하나 있다. 중심(中心). 밑에는 ‘바지락 수제 칼국수’라고 적혀 있다. 칼국수 집치고는 꽤나 심오한 이름이다.

“여기 이태원이 서울의 가운데고, 전국에서 오는 식재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문이 눈에 띄고 제 머리가 이래서(삭발) 처음엔 중국집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죠.”(웃음)

이규성(41) 사장이 중심을 연 것은 2년 전. 캐나다에서 18년 간 살았던 이 사장은 서울에 오기 전 4년 동안 한국식품을 유통했다. 단순히 한국 식료품을 수입해 파는 것 이상이었다. 직접 전국을 여행하면서 찾아낸 한국 특산물까지 유통했다. 마침 5~6년 전부터 시작된 ‘한식 세계화’ 사업 덕분에 북미 지역에서 개최되는 한식 박람회장도 수차례 방문했고 한식 관련 인맥도 쌓았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맛있는 식재료 산지를 더 잘 알게 된 이 사장이 한국에 들어와 시작한 사업이 바로 이곳 중심이다.

그런데 왜 칼국수 집이었을까.

“좋은 식재료로 일상의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고 싶었어요. 한 끼에 몇 십 만원하는 근사한 식당은 맛은 있지만 먹고 나면 늘 허전하고 부담이 되더라고요. ‘김밥천국’처럼 언제 가도 부담 없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칼국수 천국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요리를 전공하지 않은 제가 가장 쉽고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칼국수이기도 했고요.”

중심의 칼국수 메뉴는 색다르다. 바지락 칼국수는 기본. 들깨를 갈아 콩비지와 함께 끓여낸 ‘들깨 칼국수’, 김치찌개처럼 얼큰하게 만든 ‘김치 칼국수’도 있다. 이 세 가지를 합한 게 ‘짬뽕 칼국수’다. 여성고객이 제일 좋아하는 건 칼국수 면을 찬 물에 헹군 다음 양상추 등 각종 채소와 함께 달콤새콤한 흑임자 소스를 뿌려낸 ‘칼국수 사라다’다. 모두 이 사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음식들이다.

“술을 워낙 좋아해서 아침 해장으로 칼국수를 먹는데 바지락 칼국수만 먹으니까 질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것저것 제 입맛에 맞는 칼국수를 만들게 됐죠.”

오랜 외국생활도 참신한 메뉴 개발의 자산이 됐다. 손님을 초대해 직접 음식을 대접할 때가 많은데 이때 단골 메뉴는 익숙한 맛의 한식이었다. 문제는 먼 이국땅에서 혀가 원하는 맛의 식재료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대체품을 찾아 비슷한 맛을 내는 일에 익숙해졌죠. 김치를 만들 때 한국 배추가 없으면 중국 배추로 겉절이를 하는 일은 흔하죠. 외국 생활을 오래한 주부들이 한국에 오면 모두 실력 있는 요리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한식 맛을 재현하려니 창의력이 뛰어날 수밖에요.”

칼국수 사라다, 바지락팝콘, 빠다장조림밥 등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렇다고 중심의 메뉴들이 국적 불명의 퓨전 요리는 아니다. 한식 고유의 개념은 지키되 주인장이 자신의 입맛을 믿고 재료를 조금 다르게 사용할 것뿐이다.

“새우장을 만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간장을 쓰는데 전 직접 담근 조선간장을 쓰죠. 그래야 짠맛을 줄이고 깊은 맛이 나니까요. 멍게 비빔밥을 만들 때는 우리 집만의 밑간으로 양념한 멍게와 김 가루, 밥만 비비게 하죠. 다른 집처럼 초고추장을 쓰거나 채소를 얹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멍게 비빔밥을 먹느냐, 멍게 맛 비빔밥을 먹느냐의 차이가 중요하니까요.”

재료가 맛있으면 음식은 맛있다는 게 이 사장의 원칙이다. 색다른 메뉴를 개발하는 데 그쳤다면 중심은 그저 ‘이색 맛집’에서 끝났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사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국을 돌며 식재료를 고르고 향토 음식을 발굴한다.

“가끔 단골손님들에게 전복장아찌를 서비스합니다. 전복으로 장아찌를 만든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전복 산지에 가면 전복장도 있고 전복 젓갈도 먹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음식이 너무 많아요. 그 호기심이 계속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지인도 많다고 했던가. 유통업을 하며 전국의 작은 소도시 읍면동을 두루 방문한 이 사장은 중심을 하면서도 단골 고객들과 쉽게 친해진다. 허름한 창문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 나무 메뉴판도 새로운 메뉴가 개발 될 때마다 단골들이 축하의 의미로 쓴 것들이라 글씨체가 다 다르다. 그런 그가 조만간 작정하고 중심 앞에 술집을 낸다니 그 메뉴들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강추 메뉴 : 1순위 새우장. 통통한 새우 살 씹는 맛과 땅콩가루를 얹은 밥에 간장소스를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2순위 칼국수 사라다. 탱탱한 칼국수 면발과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 달콤새콤한 흑임자 소스 ‘3박자의 조화’가 감동적이다. 3순위 바지락 팝콘. 전북 고창에서 매일 공수 받는 바지락을 살이 비치도록 튀김옷을 얇게 입혀 튀겼다. 별명은 ‘섹시 바지락 팝콘’. 바삭하면서도 식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튀김 반죽 비법은 살짝 섞어 넣은 맥주다.

범스(BUMS)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요리사죠”

화려한 명품 숍들이 빼곡히 들어선 청담동의 한 골목에 촌스러운 플랭카드가 붙어 있다. ‘속풀이 배추탕’. 50년 전통의 국밥집도 아니고, 또 배추탕은 뭔가.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웬만한 이태리 레스토랑 뺨치게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다. 2010년부터 조준범(37), 조재범(35) 형제가 운영해온 집밥 식당 ‘범스(BUMS)’다.

메인 메뉴는 ‘외할머니 간장게장’. 메뉴판엔 ‘3대에 걸쳐 담궈온 갖은 양념이 들어간 간장게장’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식사메뉴를 보니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이라면 메뉴판을 들고 씨름 꽤나 할 것 같다. 떡갈비, 안심탕수육, 돼지불고기, 가지찜, 김치전, 감자전 같은 익숙한 메뉴가 있는가 하면 가지볶음밥, 게살알밥, 1977년 김치찌개, 매실고추장찌개, 카레순두부, 토마토하레라이스, 배추탕, 계란부추범벅 등 난생 처음 보는 메뉴도 있다.

“모두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들입니다.”

준수한 외모의 훈남 형제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각각 산업디자인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요리 수업은 전무. 그런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의기투합해서 시작한 일이 바로 범스다. 청담동에 그것도 ‘집밥 식당’을…4년 전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유학생활을 하면서 맛있는 집밥이 늘 그리웠어요. 막연하게 믿고 먹을 수 있는 밥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집 음식을 먹어 본 친구들의 응원도 식당을 열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범스의 모든 음식은 형제가 직접 만든다. 아침 일찍 가락동 시장엘 나가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는 일도 형제의 몫이다. 처음 1년 동안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간 맞추기를 도와주셨지만 이젠 간장게장도 형제가 직접 만든다. 메뉴 이름도 모두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들이다. 청담동에 안 어울리는 ‘속풀이 배추탕’ 플랭카드도 형제의 아이디어다.

“날이 추워지면 ‘뜨끈한 배추탕’이라는 플랭카드로 바꿔달아요.”(웃음)

형제는 자신들이 음식을 직접 만들기는 하지만 메뉴는 이미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30년 전에 개발한 것들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요리하기를 참 좋아하셨어요.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거나 동네 요리학원에서 뭔가를 배우면 꼭 자신만의 요리법을 응용한 음식을 만들어주셨죠. 연한 카레에 순두부를 넣은 건지, 순두부찌개에 카레가루를 넣은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레순두부찌개’ 같은 거요.”(웃음)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들은 집에서 정통 한식만 해주신 게 아니다. 가족들에게 요리 솜씨를 뽐내기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정체불명의 ‘엄마표 요리’들을 참 많이 만들어주셨다. 형제는 한식의 깊은 맛에 엄마의 창의적인 손맛이 어우러진 음식이 범스의 메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범스의 메뉴들은 익숙한 듯 하면서도 뭔가 색다르다. 간장게장도 간장을 부어 게를 삭힌 건 맞는데 양념이 조금 다르다. 고춧가루와 잘게 썬 쪽파와 양파 등이 들어갔다. 그런데 맛이 맵지 않고 뒷맛이 개운하다. ‘게살알밥’은 이 간장게장 소스에 게살과 날치 알을 듬뿍 얹어서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음식이다. ‘1977년 김치찌개’는 형 준범씨가 태어난 해로 형제가 그때부터 먹어 온 ‘어머니 표 김치찌개’다. 속풀이에도 좋고 추운 겨울에도 좋은 ‘배추탕’은 단 맛 나는 싱싱한 배추와 감자, 청량고추를 넣고 끓인 것으로 배추국보다 국물 맛이 진하고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게 특징이다.

기자가 형제를 인터뷰하면서 제일 처음 한 말이 있다. “아직도 버티고 있네요.” 형제가 2010년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 강희숙 선생님이 “조카들(언니의 동생)이 밥집을 냈다”며 초대하셔서 들른 길이다. 그리고 만 4년이 흘렀다.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욕심을 내서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했다. 심야엔 술이 메인이었다. 하지만 곧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줄였다. 메뉴에서 소주도 없앴다. 형제의 체력이 달린 것도 이유지만 ‘음식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청담동은 술집 트렌드가 참 빨라요. 어느 집이 뜬다 하면 우르르 몰렸다가 메뚜기처럼 또 다른 집으로 옮겨가죠. 술과 함께 먹는 안주는 맛을 기억하기도 힘들죠. 우린 손님들이 우리 음식 맛을 기억해주고 인정해주길 바랬어요. 그래서 ‘집밥’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거죠.”

누가 더 음식을 잘 만드냐고 물었더니 형제는 서로를 추켜세운다. 집요한(?) 추적 끝에 “형이 더 꼼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훈남 외모 때문에 데이트 신청을 받은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둘 다 손을 젓는다. 형 준범씨는 3년 전 결혼했다며 반지를 보여줬고, 동생 재범씨는 아직 여자 친구가 없다며 빙그레 웃었다. 범스의 모든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추 메뉴 : 1순위 당연히 외할머니 간장게장이다. 고춧가루, 쪽파, 양파가 동동 떠다니는 간장소스는 비주얼 자체부터 여느 간장게장과 다르다. 첫맛은 달콤짭짤, 뒷맛은 칼칼개운하다. 간장게장만 따로 판매도 한다. 2순위 게살알밥. 게살은 살살 녹고 날치알은 톡톡 터진다. 입안에서 서로 다른 식감이 요동치는 게 맛있게 들린다. 그리고 간장게장 소스는 집에 싸가고 싶은 맛이다. 3순위 카레순두부. 카레 가문과 순두부찌개 가문이 두고두고 ‘원조’를 다툴 만한 맛이다. 얼큰한데 부드럽고, 매콤한데 향기롭다.

서정민 기자

서정민 기자의 일방적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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