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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집념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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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언론학

‘보난자(Bonanza)’라는 서부극이 있다. “딴따라딴다…” 말발굽 소리를 따온 경쾌한 시그널로 시작되는 미국 NBC 방송의 전설적인 서부극이다. 종편 JTBC 전신인 TBC 전파를 탄 흑백 드라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으로 나온 KBS의 ‘로하이드’와 함께 1970년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석호필을 탄생시킨 연전의 ‘프리즌 브레이크’ 못지않았던, 그 시절 인기 절정의 미드였던 셈이다. ‘보난자’가 인기를 끌었던 당시 대학가에는 ‘보난자’라는 선술집들이 등장했고 영어이지만 ‘보난자’가 마치 목격자·참가자 등과 비슷해 우리말로 아는 이들도 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계기로 통일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이를 ‘잭팟’이니, ‘보난자’니 하면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사행성 성격이 짙은 ‘잭팟’보다는 행운이 함께하는 ‘보난자’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그러나 ‘보난자’ 또한 새벽안개처럼 그냥 오지는 않는다. 주로 개척시대에 유행했던 이 매력적인 단어에는 당시의 고된 노력과 끈기, 인내, 그리고 눈물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더욱 “통일은 대박”이라는 문맥에서 더 ‘보난자’가 어울릴 듯하다.

새삼스레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하지만 통일은 보난자 즉, 대박임에는 틀림없겠다. 나는 가끔 서울 거리에 묘향산이나 개마고원 같은 북한 지명을 따온 업소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곤 했다. 남북대치가 극에 달했던 과거, 북한 지명을 사용할 경우 색안경을 끼고 보던 사회 환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영변의 약산도, 미인이 많았다던 강계도 궁금하다. TV 드라마 ‘정도전’에 등장하는 함경도 변방 땅도 가보고 싶다. 그러나 너무 오랜 세월 단절된 나머지, 북녘땅에 대한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져 간다. 무산의 철광산, 수풍댐 등등 학창 시절 지리수업의 기억들도 이제는 아득하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강대국, 나아가 세계인들의 지지를 얻는 일이다. 주변 4강을 비롯해 지구촌 많은 나라들에 한반도 통일이 그네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통일 공공외교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럴 경우 독일은 좋은 벤치마킹이 된다. 패전 뒤 분단국가가 된 독일은 나치를 반면교사로 삼은 외교전략을 세운다. 두 차례나 세계전쟁을 일으킨 호전적인 국가이미지를 지우는 것, 공공외교의 첨병 격인 ‘괴테 인스티튜트’의 명칭도 그래서 나왔다. 평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는 국가이미지를 고려한 것이다.

독일은 공공외교를 통해 ‘자랑스러운 독일의 역사’는 아예 깡그리 지우고 ‘과거의 침략을 철저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독일’을 가장 강조해 왔다. 자존심 상한다,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아왔지만 이 같은 로키(low-key) 전략이 통독에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독일의 경우와 달리 우리는 이 점에서 자유롭다. 자신의 잘못으로 분단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분단된 것이므로 유엔헌장의 원칙이나 국제법상으로 통일의 당위성이 있다. 오천년 역사에 단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해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그러나 보난자가 그냥 오지 않는 것처럼 통일 또한 그저 오지는 않는다. ‘No gut, no glory(집념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의 논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잊혀져 가던 통일에의 꿈은 이제 대통령의 발언으로 전 국민의 가슴에 되살아나고 있다. “다만 하나이고저/ 둘이 될 수 없는 국토를/ 아픈 배 부벼 주시는 약손같이 그렇게 자애롭게 쓸어 주십시오.” 조지훈의 시 ‘첫 기도’다. 맞다. 결코 둘이 될 수 없는 한반도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