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검거에서 드러낸 경찰수사의 허점>
서울 신당동 부성사 전당포 살인강도범의 체포는 시민 신고정신의 또 한번의 개가였으며 경찰수사는 여전히 허점이 많았음을 나타냈다.
연쇄살인범 김대두 사건 때도 경찰수사력이 시민의 제보 없인 꼼짝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정확한 신고에 접하고, 범인을 눈앞에 보고도 선뜻 못 잡는 경찰의 허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경찰 내적인 온갖 모순과 결함을 감안한다해도 이번 전세규 사건에서 보인 경찰의 무능은 그동안 있은 모든 사건에 경찰이 어떻게 무력했는가를 재연한데 지나지 않았다. 한 탈영병이 강도살인을 했을 뿐인 별 것 아닌(?) 강력사건에 1천여명의 무장경찰이 철통같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헬」기를 동원, 수색을 하는 등 수선을 피웠던 것은 그렇다하고 사건 발생후의 초비상망 속에서 20일 동안 범인이 한번도 검문·검색을 받지 않았다는 기적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번 사건수사에서 경찰은 초동수사를 철저히 해 범인의 신원을 빨리 파악하고 장물수사에 신속성을 보이는 등 수사상 칭찬할 점도 없진 않지만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등 많은 「미스」를 저질렀다.
▲경찰은 강력사건에 관한한 공개수사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사건발생 때마다 시민의 제보를 목마르게 기대하면서도 발생부터 숨기려 애쓰고 시민제보의 자료를 제공치 않았다.
탈영병 전이 범인이란 사실을 사건 발생 3일만인 지난 9일 확인, 전국 경찰에 수배하고도 전의 신원이 「매스컴」에 보도된 것은 1주일 후인 16일이었다. 그나마 전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21일. 탈영병이란 사실에 따른 군의 요청과 수사상황보도에 따른 전의 자살가능 방지가 그 구실이었다.
▲검문·검색이 소홀했고 그나마 형식적이었다. 시민의 정확한 신고가 다섯 차례나 있었으나 번번이 어물대느라 범인을 잡지 못했다. 지난 22일에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 사창가여관과 전당포·DP점을 범인이 드나들며 7시간 20분을 보냈으나 「드리패스」였다. 신고를 받거나 범인을 목격한 경찰관도 범인의 도피로를 차단, 인근 파출소나 검문소에 연락하거나 공포발사 등으로 범인의 도주를 막았어야 했다.
▲수사공조(공조)체제가 미비했다. 경찰국·경찰서·파출소·검문소간, 군·경간 수사 협조가 잘 안됐었다.
▲수사상 판단「미스」가 많았다. 범행 후 21일까지 전이 대구에서 달성공원 등지를 돌며 지냈으나 경찰은 전이 12일까지만 대구에 있은 것으로 오판, 대구에서의 추적에 소홀했다. 마찬가지로 25일도 신고에만 흥분, 전을 바짝 뒤쫓고도 포위망을 엉뚱한데 구축, 검거가 15시간 이상이나 늦어졌다. 전이 백운산 기슭으로 숨자 경찰은 능선 남쪽(수원쪽)으로 달아났을 것으로 판단, 전이 정반대쪽인 「프랑스」참전기념비 뒷산 숲에 숨어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는 동안 1천여명의 경찰병력이 헛고생만 했다.
▲수사간부들이 수사지휘보다 상부 보고에만 급급했다. 시흥 수색현장에 나온 수사간부들은 『신고자가 누구냐』는 등 상부 보고용「취재」에 바빠 전의 연고지 수사에 소홀, 최호철씨의 신고를 받고야 당황해서 전의 친구 김종원씨 집에 형사를 배치하는 등 효율적인 수사지휘를 못했다.
▲경찰의 감투·희생정신이 기대이하였다. 25일 안영자씨가 경기도경「사이카」를 탄 이창규 순경에게 신고했을 때 이 순경이 곧바로 전이 있는 박광자씨 가게로 달려가지 않고 원병요청을 위해 반대쪽인 의왕지서로 간 동안 전이 수원쪽으로 달아났으며 지지대 고개 검문소의 엄충섭 순경 등도 전을 추격하면서 너무 소극적이어서 범인을 오히려 쫓아보내는 결과를 빚었다. 경찰 「사이카」에 무전시설이 대부분 갖춰지지 않은 것도 문젯점으르 제기됐다.<주원상 기자>주원상>범인검거에서>
시민신고 또 개가…전세규 검거|전당포 살인강도, 21일만에 시흥 친구 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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