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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근혜 정부 '규제 관료'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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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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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차 풍경은 강렬하다. 대통령은 의지와 자신감으로 무장한다. 대통령은 호랑이 등에 오른다. 절제의 언어는 후퇴한다. 말은 긴박해진다. 열망의 언어는 공세적이고 비장하다. 규제는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로 규정된다.

 규제 혁파는 국정 승부처다. 그것은 관료와의 전쟁이다. 그 무대는 실패로 얼룩졌다. 전임 이명박, 노무현 정권도 좌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차별화 의지를 다듬는다. 20일 청와대 토론회는 혁파의 본격 출발점이다.

 규제 타파는 불가능한가. 성공 노하우는 있다. 원로 행정 고수들은 안다.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의 회고는 인상적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 때다. 그는 신임받는 장관이었다. 그 시절 재무부에 외환관리과가 있었다. 해외여행 때 갖고 갈 달러의 한도는 사전 허가제였다. 외환관리과의 그 규제는 까다로웠다. 김용환은 규제를 풀어 은행에 넘기라고 했다. 장관 지시는 실천되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시큰둥했다. 장관의 집념은 치열했다. 그는 비상수단을 썼다.

 “담당 국장을 바꾸는 인사 조치를 했다. 그래도 그 아래 과장이 규제를 고집했다. 그래서 담당 부서를 폐지했다. 외환관리과를 아예 없앴다. 그랬더니 규제가 풀어졌다.”

 김용환의 경험은 명쾌하다. “관료는 자기가 쥔 규제 권한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서슬이 퍼런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실세 장관의 명령은 뭉개졌다. 규제는 관료 권력이기 때문이다. 규제는 공무원의 힘이다. 규제는 민간인을 간섭, 통제한다. 나쁜 규제일수록 그 쾌감은 달콤하다. 악성 규제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

 김용환은 부총리 현오석의 접근 방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단언한다. “규제에 집착하면 담당 공무원의 자리와 부서를 없애야 한다. 지금 경제팀은 그런 각오가 없다. 평범한 방식으론 규제 개혁은 어렵다.” 김용환은 원로 친박모임 좌장이다.

 박 대통령은 “규제 개혁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로 읽자”고 했다. 규제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풍력발전소 건설, 호텔 건축 문제 등은 그대로다. ‘풀자’와 ‘묶자’의 엇박자는 계속된다. ‘손톱 밑 가시 뽑기’도 어렵다.

 강동석은 인천공항의 신화다. 공항 건설·운영 때 반대와 악담은 무성했다. 그는 그 장벽을 뚫었다. 규제문제를 세련되게 다뤘다.

 그의 얘기는 체험을 담고 있다. “여성 대통령의 섬세한 리더십이 주효할 수 있는 분야가 규제다. 박 대통령의 말은 국민에게 간절하게 전달된다. 관료 세계에 긴장감을 넣는다. 긴장이 커지면 행정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개혁의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손수익은 행정 9단이다. 산림청장,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의 푸른 산은 그의 행정 성취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개혁에 배수진을 쳤다”고 했다. “목숨을 걸 사람이 필요하다. 장관들이 현장 바닥에서 일선 공무원들과 뒹굴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필요 또는 불필요 규제를 분류한 뒤 불필요한 규제를 선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청와대 토론회는 소통무대다. 다수 국민은 규제 혁파의 긴급함을 실감할 것이다. 착한 규제는 적다. 기업인들은 낡고 나쁜 규제에 지쳐 있다. 규제는 민생의 미시적 공간까지 들어와 있다. 끝장 토론회는 출발점이다. 실천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김용환의 경험은 유효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김용환 방식은 롤 모델이다. 자리를 없애면 규제는 없어진다. 나쁜 규제를 깨는 근본 처방이다. 현오석 경제팀은 선배 김용환의 노하우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담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관료의 속성은 현상유지다.

 손수익의 노하우는 절실하다. 규제 혁파에 목숨을 거는 장관, 청와대 참모들은 찾기 힘들다. 정홍원 총리의 목소리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규제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원칙론의 반복은 정책 상상력 빈곤이다.

 강동석의 경험은 짜임새 있다. 관료 사회는 유별나다. 독려와 격려를 병행해야 한다. 일부 공무원들은 과거 실패사례를 기억하려 한다. 그들은 대통령이 지치기를 기다릴 것이다. 어설픈 변명도 준비할 것이다. “대통령이 몰아붙이면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한다.”

 그런 핑계를 부끄러워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규제를 선제적으로 풀려는 관료들이다. 그들에게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공직 사회에 사명감을 확산시켜야 한다. 관료의 개혁 궐기를 유도해야 한다.

 집권 2년차 국정은 달리는 호랑이다. 멈출 수 없다. 속도가 줄면 등에서 떨어진다. 박 대통령은 의지와 언어를 나눠야 한다.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호랑이 등의 안정감이 유지된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