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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일본 학자 1300명의 고노담화 훼손 반대 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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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차관급 협의 말이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사이키 아키타카(齋木昭隆)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3시간 이상 만났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이키 차관이 뭔가 새로운 메시지를 갖고 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이럴 거면 뭣하러 왔느냐는 불만과 함께 면피용 ‘할리우드 액션’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비롯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사이키 차관이 방한한 날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이율배반이고, 자기모순이다. 고노담화를 검증하되 수정은 하지 않겠다는 해괴한 논리와 맥이 닿아 있다. 어떻게든 고노담화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보겠다는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전범재판 기록 등 수많은 문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다. 보다 못한 일본 지식인들이 나섰다.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가쿠인(關東學院)대학 교수 등 15명의 학자가 주축이 된 ‘고노담화의 유지·발전을 요구하는 학자 공동성명’에 서명한 일본인 학자가 1300명을 넘었다. 이들은 고노담화 검증에 반대하며 고노담화의 정신을 구체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1년 이상 정상회담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양국의 동맹국인 미국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책임 소재가 너무나 명백한 위안부 문제에서조차 일 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만나자고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스토킹이다. 악수를 하고 싶으면 손부터 씻어야 한다. 아베 내각은 일본 지식인들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