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J] 시계왕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4.03.13 10:33

업데이트 2014.03.13 11:49

초대받은 자에게만 허락된 왕국의 문이 열렸다. 제23회 SIHH에 다녀왔다.

제네바는 재미없는 도시다. 거기 사는 사람들도 동의한다. 이번에 머물렀던 호텔의 야간 지배인마저 그랬다. “(나도)일 때문에 여기 있는 거에요. 여기선 할 게 없어. 계약기간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도시 안에서 손꼽히는 여행지가 고작 UN본부라는 사실에서도 이 도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 세계의 눈길이 쏠린다면 몇 번의 국제적인 박람회가 열릴 때다. 제네바 모터쇼, 그리고 SIHH. SIHH는 2014년 23회째를 맞은 고급 시계 박람회다. 이름부터 프랑스어 ‘국제 고급 시계 박람회(Salon International de la Haute Horlogerie)’의 약자다. 고급 시계라는 말은 곧 열릴 바젤월드와 SIHH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가보면 바젤월드는 시계 박람회라기보다는 시계 산업 박람회임을 깨닫게 된다. 온갖 시계는 물론 시계 공구, 시계를 담을 쇼핑백 회사까지 참가한다. SIHH는 반대다. 여기는 16개의 시계 브랜드만 참가한다. 그 중 농담으로라도 저렴하다고 할 만한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바젤월드와는 달리 SIHH는 미리 초대받은 업계 관계자나 미디어 종사자만 출입 자격을 받는다. 올해 한국에서는 '젠틀맨'을 포함해 14명의 월간지, 일간지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제네바를 찾았다.

그래서 SIHH는 바젤월드에 비해 모든 면이 무척 고급스럽다. 당연하다. “우와 고급스럽다!”는 탄성이 나올 무형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과 베짱과 돈과 장치가 필요하다. 각 브랜드의 전시장은 그 모두가 합쳐진 일종의 세트장이었다. 위 사진은 올해 SIHH의 로저 드뷔 부스다. 이들은 ‘오마주’라는 이름에 맞는 거창한 무대를 만들었다. IWC는 2014년을 다이버 시계 아쿠아타이머의 해라고 선포했다. IWC 브랜드 부스에는 천장에 거대한 상어 박제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 식이었다. 남자 물건 중 가장 고급스러운 걸 만드는 회사들이 각자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의 트렌드는?” 이런 박람회가 끝날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다. 가장 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주제다. 이번에 인터뷰했던 반 클리프 아펠 CEO 니콜라스 보스의 말을 옮긴다. “각자의 색깔.” 그랬다. 여기 모인 16개의 고급 시계 브랜드는 자석에 달라붙는 쇳가루처럼 한데 모이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방향으로 더욱 더 퍼져나갔다. 중국 부자를 겨냥한다, 어떤 소재를 집중적으로 쓴다, 는 것 같은 공통점은 없었다. 오히려 각 브랜드는 서로가 서로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일에 더 큰 힘을 쏟는 것 같았다.

여기 나온 시계 브랜드는 야구로 치면 포지션별 에이스다. 그들의 공통점이 ‘뛰어나서 돈 잘 버는 선수’인 것처럼 이 시계들의 공통점도 ‘좋아서 비싼 시계’ 정도다. 기계적으로 강한 브랜드는 엄청난 신기술을 뽐냈다. 세공에 강한 브랜드는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한 세공 시계를 선보였다. 상상력이 풍부한 브랜드는 대단히 창의적인 콘셉트의 시계를 공개했다. 2014년 SIHH는 그런 16개의 개성이 모인 자리였다. 고급 시계라는 작은 생태계가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어지는 페이지에서부터 이번 SIHH의 시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소개한다. 브랜드별로 하나씩,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그루벨 포시는 제외했다.

글=젠틀맨 박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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