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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30년-한국 경제|돈의 변모로 본 경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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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은 경제의 얼굴이며 체온이다. 돈의 흐름이나 변모는 경제의 성장 과정과 수난사를 나타낸다. 해방 30년, 우리 나라의 돈은 원에서 환으로 또「원」으로 얼굴을 바꾸면서 1천분의 1로 명목 절하를 했다. 그만큼 경제가 격변했고 또「인플레」가 심했다는 뜻이다. 돈의 대외가치인 환율은 지난 30년 동안 3만3천 배로 올랐다. 또 30년 동안의 경제적 격변이 심했던 만큼 경제 조처와 용어도 무수히 명멸했다. 해방 30년의 경제적 흐름을 돈의 변모를 통해 거슬러 살펴본다. <경제부>
해방 당시 유일한 법화인 조선은행권의 발행 잔고는 49억원이었다. 이것이 원과 원으로 두 차례의 명목 절하 끝에 75면6월말 현재 4천52억원이 되었다. 해방 30년 동안 발행고가 8만2천 배로 늘어난 것이다.
돈의 팽창은 실물 경제의 비대와 아울러 물가의 폭등을 반영한 것이다. 해방 후 30년 동안 물가는 1만5백13배가, 돈의 대외 가치인 환율은 3만2천3백 배가 올랐다.
그러나 해방 30년의 경제적 변모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해방 당시 한국 경제는 거의 황무지였고, 또 지난 30년 동안 6·25동란 같은 변란을 치렀기 때문에 그 동안의 경제적 격변치를 정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해방후 30년 동안 물가가 1만5백 배, 환율이 3만2천 배 오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물 경제면에서도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해방 30년 동안 국민 경제 규모는 15억「달러」에서 1백70억 「달러」로 커졌으며 수출은 3백만「달러」에서 45억「달러」로 1천2백 배, 수입은 6천만 「달러」에서 64억 「달러」로 1백5배, 「시멘트」 생산은 9천t에서 1천만t으로 1천 배, 철강은 8백t에서 2백만t으로 2천4백 배가 늘었다.
l인당 GNP는 43원에서 20만7천5백원으로 4천7백92배, 임금은 한달 4·4원에서 3만5천85원으로 7천9백배, 인구는 1천9백37만명에서 3천3백46만명으로 l·7배 증가했다. 확실히 상물 경제면에선 엄청나게 커졌지만 모든 국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충족도나 성장 혜택의 균정도에서 그에 비례하여 커졌는지는 의문스럽다.
8·15 당시 49억원이던 발행고는 불가 4년 뒤인 49년엔 7백51억원으로 급증했고 이는 50년6·25 동란의 발발과 더불어 전시 적자 재정 때문에 천문학적으로 팽창했다.
해방 30년 경제를 특정 지은 「인플레」 과열 팽창이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해방이 되던 그해 9월부터 급성 「인플레」로 원 가치는 폭락, 거래의 중심이 5, 10원권에서 l백원권으로 높아졌다.
또 미군정이 45년10월 최초로 적응했던 「달러」당 15원의 공정 환율이 48년엔 4백50원, 50년 2천5백원, 51년 6천원으로 치솟았다. 그 동안의 경제는 적산 불하와 「마카오」 무역으로 대표되고 유일한 축적 자본인 토지는 토지 개혁과 지가 증권의 휴지화로 하루아침에 몰락의 과정으로 접어들었다. 「인플레」에 견디다 못해 정부는 53년2월 긴급통화 개혁을 단행, 원을 환으로 바꾸면서 1백대 1의 명목 절하를 했다.
53년7월 휴전 협정과 더불어 막대한 외원에 의한 경제 부흥이 시작되자 돈 가치의 폭락도 어느 정도 주춤하게 되었다. 57년부터는 재정 안정 계획을 수립·실시하는 등 강력한 안정정책을 편 결과 58년엔 물가가 6%나 떨어지는 기적도 보였다.
원조불에 의한 근대적 기업이 하나씩 터를 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이런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3·15 부정 선거와 4·19, 5·16 등의 정치적 변혁을 겪는 동안 통화 가치는 다시 폭락, 62년6월10일 제2차 통화 개혁을 불가피하게 했다. 원을 환으로 바꾸면서 돈은 10대 1로 명목 절하되었다. 60년대 전반기엔 한국 경제는 몇 차례의 난파의 고배를 겪었으나 하반기부터 한·일 국교 정상화에 의한 차관 경기 월남 특수·수출「붐」등을 타고 외채에 의한 고도 성장이 시작되었다. 65년부터 본격화된 외자 도입은 74년 말까지 76억「달러」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빚에 의한 확대 팽창의 계속은 70년에 들어 부실 기업 파동을 낳았고 이는 때마침 닥친 세계적 불황에 가세되어 거의 전기 업이 휘청거리게 되었다.
72년8월3일에 단행된 8·3조처는 겨우 기반을 잡으려 하던 중산층과 근로자에게 결정타를 먹였으며 이는 74년의 급성 「인플레」로 더욱 심화되었다. 그후 1·14조처와 계열 기업 여신 관리 등에 의하여 근로자 보호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 시도되고 있으나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해방 30년의 경제는 물론 전쟁 등 사회적 격변도 많았지만 실물 경제의 성장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돈의 가치 안정에 지극히 소홀하여 근로소득의 상대적 저하, 부의 격차 심화, 부동산 선호의 강화 현상을 빚었다. 결국 해방 30년 경제는 돈의 수난사이며 실물 경제가 성장한 만큼 국민적 만족도도 향상돼야 한다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주요 경제일지>
◇1945년
▲8월 서울 인구 85만명
▲10월 최초로 공정 환율 설정 (15「원」대 1「달러」)
▲12월 일인 예금 동결, 일인 재산 귀속 재산으로 지정
◇1946년
▲3월 미곡 증산 5개년 계획 발표, 기속 농지 개혁
◇1947년
▲2월 중석·연 등 처음으로 해외 수출
▲7월 대미 환율 50「원」대 1「달러」로 인상
◇1948년
▲5월 북한의 송전 단절로 남한 수출제 송전 실시
▲12월 한·미 경제 원조 협정 체결
◇1949년
▲4월 한·일 통상 협정 체결
▲6월 농지 개혁법 공포
◇1950년
▲6월 한국은행 설립
▲9월 제1회 화폐 교환 조치 실시 (한국은행권 발행 구 조선은행권과 교환)
▲12월 「유엔」한국 재건단 (UNKRA) 설치
◇1951년
▲10월 한·미 재정 협정 조인 (워싱턴)
▲12월 금에 관한 임시 조치법 공포 (금의 자유 판매제 규정)
◇1952년
▲5월 한·미 경제 조정 협정 조인
◇1953년
▲2월 화폐 개혁, 1백원을 1원으로 호칭 절하
▲12월 경제 복흥과 재정 안정 계획에 관한 한·미 합동 경제위 협약 체결
◇1954년
▲4월 한국 산업 은행 발족
▲7월 경제 복흥 5개년 계획 수립
◇1955년
▲6월 한·미 민간 원조 협정 조인
▲8월 증권 시장 개장, 대일 무역 전면 금지
◇1956년
▲2월 절량 농가에 상환곡 방출
▲4월 전력 사용 제한 철폐
◇1957년
▲3월 일, 대한 재산 청구권 포기 등 선언
▲12월 무역법 공포
◇1958년
▲4월 농업 은행을 특수 은행으로 개칭 발족
▲12월 한·월 통상 협정 체결
◇1959년
▲1월 「유엔」 개발 계획 (UNDP), UN 특별 기금 (UNSF) 가입
◇1960년
▲4월 상공부, 대일 통상 중단 조치 해제
▲5월 국회, 부정 축재 처리 방안 의결
◇196l년
▲2월 원일「달러」, 공정 환율을 1,300대 1로 인상, 한·미 경제 협정 조인
▲6월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부정 축재 처리법 공포
▲7월 경제기획원 신설
◇1962년
▲1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2월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식
▲5월 증권 파동
▲6월 통화 개혁 단행, 10원을 l원으로 절하
◇1963년
▲1월 신상법 발효
▲10월 국토 건설 종합 계획법 공포
◇1964년
▲5월 울산 정유 공장 준공
◇1965년
▲3월 단일 변동 환율제 실시
▲9월 금리 현실화 단행
▲12월 한·일 민간 어업 협정 체결
◇1966년
▲3월 한·일 무역 협정 조인
▲7월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확정
▲12월 대한 국제 차관단 (IECOK) 발족
◇1967년
▲3월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 협정 (GATT) 가입
▲6월 외국은행 1호로 미「체이스·맨해턴」은행 서울 지점 개설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 착공
▲6월 여의도 윤중제 준공
▲12월 경인고속도로 개통
◇1969년
▲6월 제1단계 부실 기업체 정리 단행
▲9월 마산을 수출 자유화 지역으로 선정
◇1970년
▲4월 제3차 ADB (아세아 개발 은행) 총회 서울 개최
▲5월 미 지원 원조 종료
▲7월 경부고속도로 완전 개통
▲8월 관세청 발족
▲12월 수출액 10억「달러」 돌파
◇1971년
▲6월 환율 12.9% 인상 (3백71원60전)
▲10월 금융 쇄신 대책 발표, 장기 부실 대출 정리 착수
▲11월 29개 부실 기업 명단 발표
◇1972년
▲6월 환율 4백대 1 기준에서 잠정적으로 고정키로 결정
▲8월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15호 발표. 사채 동결 (8·3 조처)
◇1973년
▲5월 중화학 건설 계획 확정
▲6월 쌀값 일반미 가마당 1만원으로 동결
▲11월 호남·남해고속도로 개통
▲12월 유류 등 9개 품목 값 대폭 인상
◇1974년
▲1월 박 대통령,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조치 3호 선포 (1·14 조처)
▲4월 유류 등 28개 품목 값 대폭 인상, 은행감독원 박영복 부정 대출 사건 전모 발표
▲5월 박 대통령, 기업 공개와 건전한 기업 풍토 조성을 위한 특별 지시 시달
▲8월 서울지하철 및 수도권 전철 개통
▲12월 환율 20% 인상 (4백대 1에서 4백80대 1) 등 「12·7」조치 발표
◇1975년
▲7월 관세 환급제 실시, 방위세법 공포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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