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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의사가 사회적 약자고 파업이 고마운 일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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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누가 들어도 뜨악한 발언이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11일 협회를 찾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방문이 의사들이 사회적 약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받는 자리가 아닌가 한다.” 더 뜨악한 발언이 이어졌다. 은수미(환경노동위원회) 의원은 “장기적으로 국민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의사가 사회적 약자라니, 파업이 고마운 일이라니. 10일 의사들의 집단휴진으로 불편을 겪어야 했던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우리는 강자하고도 친하다(김용익 의원)” “감사할 일은 아니고, 안타까운 일이다(이목희 의원)”며 말을 급히 다듬었다.

 의협은 왜 스스로를 약자로 볼까. 추측하건대 정부에 대립하는 개념인 것 같다. 정부가 집단휴진에 참여한 병원에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갑(甲)이라면, 자신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을(乙)’의 구도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권력의 억압에 맞서 힘겹게 휴진하는 피해자로 착각하는 듯하다.

 물론 어느 집단이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약자일수록 극단적으로 대응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의협의 집단휴진은 어느 투쟁 방법보다 극단적이다. 자신들이 약자여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걸까. 의협은 24~29일 2차 휴진을 한다. 이번에는 동네병원뿐만 아니라 종합병원 전공의도 대거 참여할 기색이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전공의도 참여한다. 2000년 의약분업 집단휴진 때 의사들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지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극단적인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다.

 돈과 명예, 무얼 따져봐도 의사는 여전히 ‘사회적 강자’다.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지방대 의대를 선택하는 수험생들, 해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려 몰려드는 대졸자들이 그 증거다. 이런 의사들이 극단의 방법을 택했다면 합당한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子)회사 허용에 다소간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환자를 볼모로 병원문을 닫을 만한 건지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집단휴진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최대 연속 36시간 수련 금지 등의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책은 이미 시행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건강보험 제도 개선도 추후 논의해 나가기로 한 사안이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무릎을 꿇는다면 의료의 미래와 희망이 사라진다”고 썼다. 그 미래와 희망에 환자는 안중에도 없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