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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4396만 vs 동맹군 2525만 … 현대식 기술에 민·군 1657만 명 사라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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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14면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겪은 가장 큰 참극의 하나다. 1914년 7월 28일에 발발해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4개월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인류 역사는 방향을 크게 틀었다.

인류의 운명 바꾼 1차 대전

이 전쟁은 국제전인 동시에 규모 면에서도 전대미문의 대전이었다. 동원 병력 규모가 그 이전 어떤 전쟁보다 컸다. 연합군 약 4396만 명에 동맹군 약 2525만 명으로 모두 6921만 명이 참전했다. 초대형 규모의 전쟁이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군사력의 대결을 넘어서서 국력의 대결로 전쟁의 양상도 변했다.

전투 지역도 전 지구적이었다. 1차 대전이라고 하면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나타난 서구의 시각 때문인지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지대인 플랑드르에서 벌어진 서부전선 참호전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기껏 독일과 러시아가 전투를 벌인 동프로이센(현 폴란드 동북부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의 타넨베르크 전투 등이 유명한 정도다.

하지만 이 전쟁은 유럽의 전쟁만은 아니었다. 사실상 거의 전 세계에서 벌어졌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동쪽 끝 영토였던 갈리치아와 부코비나(현재 러시아와 갈등을 빚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도 러시아와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했다.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잘 다루지 않은 동부전선의 참혹한 전투였다.

영국군은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총리)의 주도로 터키 수도인 이스탄불의 코밑에서 상륙작전을 벌였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어진 갈리폴리 전투다. 여기서 영국은 ANZAC(호주·뉴질랜드 군단) 군단, 프랑스군 등과 함께 상륙했지만 케말 파샤 장군이 이끄는 터키군의 영웅적인 반격으로 발이 묶였다. 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벌어진 1차 대전의 전투다.

아시아·아프리카도 전쟁에 휘말려
아시아의 동쪽인 중국에서도 1차 대전이 진행됐다. 당시 독일 식민지였던 중국 산둥(山東)반도에서 벌어진 칭다오(靑島) 전투다. 영국군은 같은 연합군이던 일본군과 함께 이 지역의 독일군 수비대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군함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그때 포로로 잡은 독일군을 도쿠시마(德島) 등 본토로 끌고와 수용했다. 미국·영국(뉴질랜드군과 호주군이 담당)·일본 등은 서사모아 등 독일령 남양군도와 독일 식민지였던 뉴기니도 점령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지를 공격해 서아프리카의 토고와 동아프리카의 탕가니카를 점령했다. 1차 대전에 식민지 쟁탈전 성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인용되는 사건이다.

100년 전 바다에선 무제한 잠수함 작전
1차 대전은 인류가 이전까지 겪지 못한 최악의 대량살상전이었다.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군인 약 972만(질병·사고 포함), 민간인 직접 사망자 약 95만,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굶주림 등으로 인한 간접 사망자 약 590만을 포함해 모두 1657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군 측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가장 많은 약 375만 명이 숨진 러시아를 비롯해 프랑스(약 170만)·대영제국(영국과 식민지를 포함해 약 122만)·이탈리아(122만)가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세르비아는 전 인구의 16%인 70만 명이 목숨을 잃는 대재앙을 당했다. 동맹군 측에선 터키가 인구의 13.7%에 해당하는 약 290만 명이 희생됐다. 독일(약 247만)과 오스트리아-헝가리(약 156만), 불가리아(약 19만) 등도 전체 인구의 3% 이상이 숨졌다.

잠수함·기관총 등 대량살상을 위한 무기가 줄이어 개발되거나 실전에 배치된 탓이다. 바다에선 잠수함으로 적 군함은 물론 상선까지 침몰시켜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으론 역효과를 낳았다. 191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하면서 123명의 미국인이 사망하자 미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이로써 미국은 ‘유럽의 일은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통의 먼로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의 경찰국가로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각국이 전쟁 승리를 위해 기술 혁신에 나서면서 전투기가 등장했고 참호를 돌파할 탱크와 장갑차도 개발돼 실전에 배치됐다. 참호 속의 상대 병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독가스도 등장했다. 기술혁신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모습을 하기는 산업혁명 이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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