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계 서방·이슬람 패권 다툼 속 ‘동거’

중앙선데이

입력 2014.03.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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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14면

1 ‘사라예보 박물관 1878~1918’의 정문. 2 사라예보를 둘러싼 산 위에 있는 내전 당시의 요새. 3 암살 현장에서 바라본 라틴 다리의 모습. 프린치프는 이 방향을 보고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했다.

사라예보는 불타고 있었다. 지난 2월 중순 찾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1992~95년 내전 이후 19년 만에 벌어진 시위였다. 높은 실업률과 생활고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이 연방 정부청사와 대통령 관저에 돌을 던지고 방화까지 하고 있었다.

100년 전 ‘사라예보 총성’ 현장을 가다

암살당한 황태자 부부.
아수라장이 된 시위 현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라틴 다리를 찾았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암살한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현장이다.

다리 앞에는 박물관이 하나 있었다. 프린치프가 총을 발사한 곳의 바로 앞이다. 공식 이름은 ‘사라예보 박물관 1878~1918’. 표시된 연도는 오스트리아가 오스만튀르크 영토였던 이 나라를 차지해 보호령(1878~1908)과 영토(1908~18)로서 지배한 시기다.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가 아닌 세르비아에 넘겨야 한다”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거사 현장이 오스트리아 지배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보스니아 무슬림은 당시에도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다. 암살 사건 다음날 이들은 도심에 모여 반(反)세르비아 시위를 벌였다. 세르비아계 2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가게에 불을 질렀다. 무슬림들은 1차 대전 때 오스트리아군에 대거 입대해 세르비아에 맞섰다. 한 도시 안에서 두 개의 민족주의가 반목했다.

1차 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유고슬라비아를 탄생시키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세르비아에 오스트리아 산하였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 등을 합친 ‘조립 국가’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두고두고 반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친소(親蘇) 세르비아계와 친독(親獨) 크로아티아계 무장단체가 서로 싸웠다. 92~95년에는 무슬림-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가 삼각 내전을 벌였다. 이 내전은 약소국의 복잡한 민족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 1차 대전 승전국들이 낳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내전 이후 보스니아는 무슬림·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스르프스카(세르비아어로 세르비아라는 뜻) 공화국을 합쳐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나라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 무슬림(전체 인구의 48% 차지)·세르비아계(31.1%)·크로아티아계(14.3%)라는 세 개의 민족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언어(명목상으로는 각각 보스니아어·세르비아어·크로아티아어로 부름)는 같은데 문자(세르비아계는 키릴 문자, 나머지는 라틴 문자)가 다르고, 역사와 정체성에서 차이가 있다. 95년 미국이 중재한 데이턴 협정의 기묘한 결과다.

이유는 서로 분리할 경우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각각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 흡수되고 무슬림 국가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럽 깊숙이 무슬림 국가 보스니아가 들어서는 데 찬성할 유럽 국가는 거의 없다. 이들의 불편한 동거는 결국 강대국의 이익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라예보는 이미 무슬림 도시가 되고 있었다. 유엔 구호기관의 직원들이 주로 묵는다는 브리스톨 호텔조차 ‘알코올 프리 호텔’이 돼 술을 전혀 취급하지 않고 있다. 식당 메뉴의 절반은 케밥·팔라펠·호무스·바바가무시 등 아랍 음식이다. 이슬람 국가의 영향력이 느껴졌다.

지난 99년 이 도시를 찾았을 때 라틴 문자와 키릴 문자가 나란히 표기됐던 도로 표지판에서 이젠 키릴 문자가 사라졌다. 무슬림은 이미 이 도시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서방세력과 이슬람권은 이 나라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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