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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새봄엔 새마음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5호 27면

“폐지 가득한 리어카를 끌며 오르막에서 주저하시던 어느 할머니 모습이 생각나네요. 몹시 추운 오늘도 나오셨겠지요. 어서 봄이 와야겠어요. 할머니 따뜻하시게~. 사계 중 봄 들려주세요.”

지난겨울 내가 진행하는 아침 방송에 어떤 분이 이런 사연을 보내왔다. 글을 읽고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그 사연을 받은 후 겨울이 다 가도록 나는 그 폐지 담은 리어카 할머니를 생각했다. 날씨가 추워질 때마다 어서 빨리 봄이 와야 할 텐데, 조금이라도 할머니 도와드리는 분이 옆에 계셔야 할 텐데.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며 눈 내리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겨울이 다 지난 모양이다. 남쪽에선 꽃소식이 들려오고, 달력도 어느덧 춘삼월이니 과연 봄이라 할 만하다. 뭔가 움츠려 있던 기운도 다시 활기를 되찾고, 새해에 품었다 살짝 구석에 밀쳐둔 못난 다짐들도 다시 꺼내어 새록새록 되새기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그런데 며칠 전 만물이 소생하는 봄 앞에서 몸에 힘이 없고 매사가 귀찮다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러하다.

“스님, 저도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장황하게 계획은 세우는데 실천은 안 하고, 부모님 잔소리 들으면 짜증만 나고. 졸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하긴 했는데 취직도 안 되고 이력서도 지겹고…. 앞으로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괴로워요 스님.”

대학을 졸업한 게 무슨 죄라도 되는 양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시기에 청년은 부푼 기대는커녕 절망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도 대학에 입학했을 땐 좋은 직장에 취직해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리라 다짐하고, 멋진 옷차림에 괜찮은 여자친구도 만나며 친구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현실은 그에게 너무도 냉혹했다. 자신감을 상실한 이 청년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나는 고민했다. 젊은 사람의 절망은 나이 든 사람의 절망보다 때론 더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번쩍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얘야. 스님이 보기엔 너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취직하기 힘들고 직장에서 유능하기 어렵고 멋진 인생도 만들기 어려운 거잖아. 뭘 그렇게 기가 죽어 있는 거야. 일부러 시간 내서 놀아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인데 뭐 어때. 조금 늦게 취직한다 생각하고 여유를 좀 가져 봐. 그리고 너 자신을 좀 믿어 봐. 너는 지금 네 능력을 너무 무시하고 있잖아. 스님이 보기엔 네가 얼마나 든든하고 멋진 청년인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는 훨씬 더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야.”

눈가에 이슬 맺힌 청년은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고맙습니다. 스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교에서는 늘 자기 자신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모든 일이 다 내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불교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자신만 잘 다스린다면 뭐든 이겨낼 수 있다. 물론 현실을 통째로 바꿀 수야 없겠지만 마음가짐이 바뀌면 이 세상도 조금은 달라지리라. 그렇게 살다 보면 지난날 자신이 느꼈던 절망이 얼마나 강한 생에 대한 욕구였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열심히 살고 싶을수록 절망도 큰 법이니까.

보라. 희망의 봄기운이 그대에게 손짓한다. 어서 일어나라고. 다시 시작하라고.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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