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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색안경과 안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5호 29면

“중국에 나가 있는 한국 특파원들 중에서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 등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슬리는 기사를 써서 추방당하거나 중국 당국의 문책을 당한 가장 최근의 경우는 언제인가?”

이곳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쇼렌스타인(Shorenstein) 저널리즘 시상식 겸 만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미국의 한 중견 언론인이 대뜸 물어왔다. 내 옆에는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에서 추방당한 미국 언론인 폴 무니(Paul Mooney) 기자가 앉았다. 중국에서는 추방당했지만 이곳에선 헤드 테이블 VIP 손님으로 초청됐다.

이날 이 영광스러운 저널리즘 상을 수상한 인물은 미얀마 군부 독재에 항거해 태국으로 망명해 활동하고 있는 아웅쪼(Aung Zaw) 기자였다. 그는 이라와디(Irrawaddy)라는 신문을 창간해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를 꾸준히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는 미얀마를 탈출한 후 여권이 없어 위조 여권으로 해외를 수년간 떠돌아다닌 고생담을 담담히 술회했고, 미얀마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당할까 긴장하며 살아온 삶도 되뇌었다.

예일대의 ‘예일 글로벌 온라인’ 편집장인 나얀 찬다(Nayan Chanda)는 상을 수여하면서 “군사 독재의 공포 속에서 뉴스를 세상에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며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에 나가 있는 한국 특파원들도 이 두 기자 못지않게 용감성을 발휘했다. 추방까지는 아니지만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기사를 썼다가 중국 외교부 소환을 당해 본 한국 특파원이 많았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 취재를 자주 했던 이전의 한 특파원은 신변에 불안감을 느끼자 취재를 하러 갈 때마다 아내에게 미리 “30분마다 나한테 전화가 오지 않으면 한국대사관에 알리라”고 당부하곤 했다.

중국의 지방 시위 현장에 출장을 나간 한 한국 특파원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안내하러 나왔다”고 인사하는 정부 관계자를 본 후 식겁했다.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고 믿게 되면서 그는 도청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요즘 중국은 그렇지 않다’라는 반론도 있다. 이거 다 옛날얘기라는 것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에 맞추어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그 역할을 언론이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생겼다. 중국 측도 한국 언론의 중국 보도 방식이 같은 아시아인이면서 너무 ‘서방적’인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 한국 언론의 중국 보도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소위 ‘허니문’에 접어들면서 그렇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에 대해 한·중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생기면서 한·중 언론 사이에서도 요새 심지어 서로 ‘밀어주기’ 모습도 감지된다.

하지만 대북 관계에서 중국은 여전히 한국에 확실한 신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중국이 동중국해 상공에 일방적으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ADIZ)은 한국의 이어도를 포함했다. 파장이 일자 어느 중국 관방 학자는 “중국 국방부의 실수였다. 중국 외교부가 결정을 내렸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방공식별구역을 재조정할 의사는 비치지 않았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박진 전 국회의원은 한국 외교의 향후 20년의 큰 과제로 ‘중국 부상’의 실체를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척후병이 바로 중국 현지에 나가있는 우리 언론인들일 것이다. 중국을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안경을 벗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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