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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김연아의 올림픽, 이제부터가 시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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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31면

“억울하지만 참기로 했어. 화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김연아 선수의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은 지난주 이렇게 e메일을 보냈다. 김 선수의 은메달 확정 직후 인터뷰 요청에 “언제가 좋으냐. 전화로 얘기하자”던 그였다.

그의 침묵은 사실 김 선수의 미래를 위해선 독 아닌 득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꿈꾸는 김 선수에겐 평판 관리가 핵심이다. 개인자격 및 국제경기협회장 자격으로 입성한 위원들과 달리 선수위원(임기 8년)은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 그래서 그가 소치에서 “억울한 판정에도 미소 지으며 승복하는 정신을 보여준 멋진 선수”라는 이미지를 얻은 건 청신호다. 그에 대한 IOC 내의 평판은 ‘이보다 좋을 순 없다’에 가깝다. 금메달을 놓친 뒤에도 쿨한 모습을 보여준 게 큰 몫을 했다. 애덤 펭길리(영국) IOC 선수위원은 “유나킴(김연아)과 함께 IOC 총회에 앉을 수 있다면 큰 영광”이라고도 했다.

영광에 이르는 길은 그러나 비단길이 아니다. 일각에선 문대성 IOC 선수위원의 논문 표절 스캔들이 악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 IOC에서 문 위원에 대한 분위기는 좋지 않은 편이다. 한 유럽계 위원은 “(문 위원 표절 문제는) 지겹다. 본인이 용퇴했어야 한다”고 했다. 헝가리 대통령 출신의 팔 슈미트 IOC 위원이 표절 시비가 불거지자 자진 사퇴한 것도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국민대가 문 위원의 논문을 ‘표절’이라 결론 내림에 따라 IOC 윤리위원회 조사는 조만간 재개될 예정이다.

소치 현장에선 그러나 “김연아는 김연아”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소치 현장에서 IOC 위원 전용 숙소 로비에 계속 선 채로 동료 위원들에게 인사를 하던 그에 대한 동정론도 일었다. 한 아시아계 위원은 “선수위원들은 선수들이 뽑는 것”이라며 “국적이 아닌 선수 개인의 자질과 평판이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유럽계 위원은 “연아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도 했다.

문 위원이 표절 파고를 넘는다면 임기는 2016년 브라질 리우 여름올림픽까지다. 여름올림픽에선 여름 종목 선수만, 겨울올림픽에선 겨울 종목 선수만 선출하는 게 IOC 규정이다. 이에 따라 김 선수는 국내 후보로 결정된다 해도 2018년 평창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의 도전이 확정되고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스스로 유치를 위해 뛰었던 고국의 첫 겨울올림픽에서 선수위원이 된다는 멋진 스토리가 완성된다.

유치전이 한창이던 2011년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 샤토 드 비디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김 선수는 “(하이힐 신은) 다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질적인 오른발 통증을 견디며 하이힐을 신고 있는 10시간은 고문이었을 게다. 고통을 참아낸 건 그의 의지다. 그 의지의 목표점은 확고하다. 2018년 2월 25일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 전통에 따라 오륜기의 끝을 잡고 IOC 위원 취임선서를 하는 것. 안무가 윌슨도 그 마음을 읽고 조용히 지지하는 편을 택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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