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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관리 안 되는데 카메라가 따라오며 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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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짝’은 10여 명의 남녀가 6박7일간 애정촌에 입소해 짝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사진은 도시락 선택의 한 장면이다. 이성에게 도시락 선택을 받지 못하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SBS 화면 캡처]

“엄마 나 신상 털리면 어떻게 해” “방송 나가면 전국적인 망신이다. 모두가 보는 방송인데 어쩌나.”

 SBS 남녀 커플 맺기 예능 프로그램인 ‘짝’의 여성 출연자 전모(29)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어머니 이모(53)씨와 전화 통화에서 전한 심정이다.

 이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려 했는데 방송작가가 강요를 해서 가게 됐다”며 “촬영 과정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카메라를 많이 들이대고 그만 찍자고 해도 더 찍었다고 했다. 프라이버시와 관계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또 “왜 싫다는데 따라다니며 촬영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방송국 카메라가 24시간 돌고 세 사람이 있던 방인데 그렇게 된 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또 “아버지도 충격을 받아서 입이 돌아갈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딸이 ‘PD와 작가에게 편집을 잘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씨는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딸의 장례식도 미룬 상태다.

 전씨는 고교 동창 A씨와 B씨에게도 힘겨운 심정을 카톡 등으로 전했다. 전씨는 “촬영 몇 주 전부터 수차례 불참 의사를 밝혔으나 제작진에서 이미 제주도행 비행기 티케팅을 마쳤다며 출연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내용이 너무 내가 타깃이 되니까 방송 후에도 걱정이 된다. 지금 저녁 먹는데 녹음한 거 틀어놓고, 카메라 돌아가고, 난 표정관리 안 되고, 진짜 짜증난다”고 했다.

 전씨는 동창들이 ‘제작진과 사전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느냐’고 하자 “‘상처받은 어린 양’ ‘결혼이 XX 하고 싶은 여자’ ‘힘들어 보이지 않고 밝고 명랑, 적극적인 여자’, 이게 내 이미지”라고 말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실제는 출연자의 캐릭터 등을 조작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씨는 3일 오후에는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A씨 등에게 카톡으로 “신경 많이 썼더니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아. 제작진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가지 못해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 먹었다. 아 얼른 집에 가고 싶어”라고 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녹화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전씨의 정확한 자살 동기를 밝히기 위해 6일 SBS 측에 방송촬영 영상자료를 요청했다. 이번 촬영팀이 제주도에서 찍은 영상은 200시간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우선 촬영장이자 숙소인 펜션에서 전날 확보한 2시간30분짜리 영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유족 측이 주장하는 ‘강압적인 촬영’이 실제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SBS 측은 “영상 자료를 제출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경찰에 알려왔다. 경찰은 전씨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내용도 살펴보고 있다. 전씨가 숨지기 전 인터넷 등에 남긴 게시물이 있는지도 확인 중이다.

 서귀포경찰서 강경남 수사과장은 “프로그램 관계자 진술 등에서 아직 강요 정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휴대전화와 촬영 영상 분석 등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 5일 오전 2시15분쯤 ‘짝’ 촬영장소인 서귀포시 하예동 한 펜션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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