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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차 한 대 세우지 못한 경북경찰 교통계 황당 주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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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구 산격동 경북경찰청 교통안전계 건물 1층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2004년 지어진 이곳은 공사가 끝나갈 무렵 진입로(왼쪽 위) 땅 주인이 사유지라며 담을 쌓아 진입로 폭이 1.5m로 좁아졌다. 결국 이 주차장은 10년째 차 한 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10년 동안 차를 단 한 번도 세우지 못한 주차장이 있다.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경북경찰청 주차장이다. 텅 빈 주차장을 두고 차를 세울 곳이 없다며 건물 옆에 이중·삼중 주차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민원 업무를 보러 왔다가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건축디자인 회사 이동규(42·대구시 동구) 대표의 제보다.

 지난달 12일 찾은 경북경찰청 교통안전계 건물 앞. 건물 앞 도로엔 이씨의 말처럼 30~40대의 차량이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544㎡ 규모의 3층으로 된 이 건물은 주차장법에 따라 별도의 주차시설을 두고 있어야 한다.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꼭 필요하다. 살펴보니 건물 1층에 257㎡ 크기의 전용 주차장이 있었다. 그렇지만 탁구대만 놓여 있을 뿐 차는 단 한 대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는 아예 은색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건축법상 차량 1대를 세우는 데 필요한 공간은 11㎡. 즉 차 24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 공간을 두고 차 세울 곳이 없다며 건물 앞에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주차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그것도 교통 질서를 책임진 경찰청, 교통담당 부서 건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정은 이랬다.

 2004년 3월 경북경찰청은 4억8000만원을 들여 교통 폐쇄회로(CC)TV 단속업무를 전담하는 교통안전계 건물을 청사 본관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새로 지었다. 북구청의 건축 허가를 받고 1층은 전용주차장, 2·3층은 사무 공간으로 꾸몄다.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산격동 주택가를 지나는 너비 4~5m 골목을 통하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건물을 거의 다 지어갈 무렵 문제가 생겼다. 건물 진입로 땅 주인이 사유지라면서 담을 쌓아버렸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1.5m로 확 좁아졌다. 차량 한대가 지나가려면 최소 2m 이상 공간이 필요하다.

 결국 진입로 없는 건물이 만들어졌다. 경북경찰청 정용원 경리계장은 “땅 주인에게 돈을 주고 진입로를 사들이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며 “주인을 만나 설득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땅을 사들일 예산도 마땅치 않아 그 상태로 이렇게 10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차량이 들어오지 못한 국내 유일의 황당한 주차장이 된 배경이다.

  2011년 방치 주차장을 사무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건축법상 주차장 없는 건물은 그 자체가 불법이 돼 이마저도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진입로가 사유지인 걸 알았으면 땅 주인과 사전에 협의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게 맞았다”며 “경찰 조직이 건축 분야에 익숙지 않아 벌어진 문제 ”라고 말했다. 경북경찰청은 현재로선 주차장을 다시 사용할 방법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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