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쉿, 흥분하지 마 … 손흥민 '호날두 세리머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손흥민

그리스전 후반 10분, 손흥민(22·레버쿠젠)의 발에서 불꽃이 번쩍 일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케 했다.

 김신욱(26·울산)이 헤딩으로 내준 공을 구자철(25·마인츠)이 잡는 순간, 손흥민은 수비수 뒤 공간을 향해 맹렬히 달렸다. 구자철의 전진패스가 다소 길어 골키퍼와 거리가 가까워진 상황. 손흥민은 머뭇거리지 않고 왼 발등에 공을 얹어 대포알 같은 슛을 날렸다. 슈팅은 골키퍼가 손 써볼 틈 없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네트로 빨려 들어갔다. 골을 넣은 손흥민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뒤 두 손바닥을 밑으로 향해 내리누르는 골 세리머니를 했다.

 손흥민의 우상 호날두가 자주 하는 세리머니다. 호날두는 동료에게 골에 흥분하지 말고 침착해지라는 의미에서 이 같은 세리머니를 한다. 손흥민은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호날두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재현했다. 손흥민은 자신의 방에 호날두의 사진을 붙여놓고, 호날두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정도로 뼛속까지 호날두 팬이다.

 손흥민이 탈아시아급 선수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활약이었다. 대표팀에서 유럽팀을 상대로 첫 골을 신고한 점이 고무적이다. 그동안 손흥민은 인도·카타르·아이티·말리 등 약체를 상대로 A매치 골을 뽑아냈다. 손흥민은 전반 18분에는 감각적인 로빙 패스로 박주영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팀 플레이가 약하다’는 이유로 손흥민에게 냉정한 시선을 보냈던 홍명보 대표팀 감독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손흥민은 “팀이 좋은 모습을 보여 공격수로서 수월하게 경기했다. 원정에서 좋은 경기를 해 상당히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주영이 형이 오랜만에 합류해 멋있는 골을 넣는 것에 도움을 주게 돼 기분 좋다”고 했다.

 손흥민은 골 욕심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살리는 데도 치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홍 감독님 밑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욕심을 줄이고 슈팅 때릴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해 패스를 하게 된다. 내 욕심만 부릴 게 아니라 팀에 녹아들어 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테네(그리스)=오명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