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 민관식, 그의 숨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영호 여사가 장학재단 사무실로 변모한 옛 수장고를 찾아 남편의 캐리커처를 가리키고 있다.
조오련이 기증한 방콕(1970년·왼쪽)·테헤란 아시안게임(74년) 수영 금메달. [사진 수원광교박물관]

“지금 추진 중인 ‘아이스링크’ 공사 사정은 매우 딱한줄 압니다만 지금 이같이 많은 금액을 정부에서 염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명년도 예산에나 반영되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1970. 6. 30 박정희”

 고(故) 소강(小崗) 민관식(1918~2006) 당시 대한체육회장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낸 친필 편지다. 이듬해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이 완공되기까지의 속사정이 담겨 있다. 공사비가 2억원이 넘게 드는 사업이었다. 이 편지를 비롯해 국내외 각종 스포츠대회를 추진하면서 민 전 회장이 보관해 온 기념품과 메달, 역대 대통령의 친필 서한, 사진 등이 선을 보인다. 오는 7일 개관하는 수원광교박물관에 상설전시실이 마련됐다.

 민 전 회장은 대한체육회장(1964~71)과 문교부 장관(71~74)을 지내면서 태릉선수촌 건립 등에 이바지해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부인 김영호(89) 여사가 그를 뒷바라지하며 60여 년 넘게 소장품을 모아왔다.

 “그때 박물관에서 우리가 모아놨던 것만 차량 여러 대로 실어갔지, 아마.” 5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김 여사를 만났다. 한때 민 전 회장의 소장품들로 채워놓았던 방은 ‘소강민관식 육영재단’ 사무실로 바뀌었다. 가족들은 2010년 수원박물관에 소장품 3만 점을 기증했다. 민 전 회장이 한때 서울대 농대의 전신이었던 수원 고등농림학교에 다녔던 것이 인연이다.

민관식

 체육계 원로였던 그답게 소장품 가운데는 스포츠와 관련된 자료들이 많다. 김 여사는 “당시에는 해외 여행이 어려웠으니깐 올림픽 때문에 해외 나갈 때마다 배지나 로고 같은 선물들을 많이 가져왔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모아놓은 소장품들은 집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면서 종류와 숫자를 더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기 직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이곳을 다녀갔다. 이들 부부의 수집열이 소문나자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던 조오련 선수처럼 메달을 직접 기증하는 운동선수들도 나타났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김 여사는 남편이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교육 정책과 관련된 신문 시사만평을 모아 병풍으로 만드는 기지도 발휘했다. 시사만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어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41년 부부의 결혼 사진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양복을 입은 신랑과 한복을 입었지만 면사포를 쓴 신부가 등장한다. 화동과 신부 들러리가 신랑신부 양옆에 서 있다. 전통 혼례 방식과 서양식 결혼 풍습이 뒤섞이던 시절임을 알 수 있다.

 김세영 수원광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소장품 전시는 개인 생애를 뛰어넘어 후대들에게 한국 현대사를 비추는 생생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