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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바마 전화에 푸틴 가로되 "너나 잘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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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즈드라스트부이체(안녕하시오), 미스터 오바마.

 오랜만이외다. 소치에서 못 봬서 좀 섭섭하긴 했소만… 스파시바(고마워요). 덕분에 잘 치렀소. 500억 달러나 썼는데 그 정도 성적은 거둬야지요. 날씨가 불만스럽긴 했지만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 줬소. 심판들도 그렇고. 하하.

 아, 그 일 때문에 전화하셨소?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요. 내가 뭐 하러 크림을 먹겠소? 금방 배탈 날 텐데. 하하, 농담이오. 대통령께서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유머감각이 좀 떨어지셨어요. 크림반도가 원래 우리 땅이긴 했어도, 현상(現狀)에 만족합니다. 자치국으로 놔둬야 우크라이나에 간섭하기 쉬운데 건드릴 이유가 없지. 아, 아니오. 혼자 한 말이오.

 뭐요? 철수라고 했소? 파견하지도 않은 병력을 어떻게 철수하나…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오. 크림반도에 출몰한 군인들요? 허허, 내가 기자회견에서도 말하지 않았소? 그들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자경단원이라고요. 군복에 표지도, 계급장도 없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다? 이것 봐요, 버락! 우린 제국주의 안 해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있다고 우겨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아니란 말이오. 아, 꼭 미국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설령 그들이 러시아 병사라 하더라도 누굴 죽이기라도 했소? 그들 옆에서 귀여운 아이들이 뛰노는 신문 사진 못 봤어요? 우리는 아무 데나 미사일을 쏴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야체뉵(우크라이나 총리)도 나를 비난한다고요? 에이, 그냥 하는 소리지. 끝까지 들어보면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하잖소. 크림에 자치권을 더 주겠다고도 하고… 고마울 따름이지요. 자꾸 그러면 유럽에 셰일가스를 수출하겠다고요? 내 입김을 막겠다고? 뭐, 그래 보시든지. 시리아나 이란, 북한에서 내 도움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왜요? 혼자서도 잘하시면서. 속엔 딴 맘 채우고 입만 사탕발림인 유럽 친구들도 있잖소?

 이봐요, 미스터 오바마. 쿠바 위기 잊었소? 당신 선배 케네디가 미국 앞마당에 소련 미사일이 들어서는 걸 전쟁 불사하고 막았지. 러시아 앞마당이 바로 우크라이나요. 그런데 나토하고 짝짜꿍이 돼 러시아에 총구를 겨눈다면 당신은 어쩌겠소. 미 국무부가 2+2=5… 어쩌구 하는 도스토옙스키까지 인용해 반박했지만 웃기는 소리요. 그 도스토옙스키가 이렇게 말했소. “가장 큰 행복은 불행의 근원을 아는 것이다.” 당신 불행이 어디서 시작될지 알란 말이오. “오바마가 푸틴에게 또 당했다”는 당신네 언론 조롱은 괘념치 마시오. 개뿔도 모르고 떠드는 게 언론이니까. 다스비다냐(안녕히 계시오).

이훈범 국제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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