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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테이퍼링 시련에도 … 되는 펀드는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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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증권가는 2014년을 장밋빛으로 전망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테이퍼링을 시작하면서 신흥국 위기가 불거졌고 펀드 시장도 몸살을 앓았다. 매월 85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을 펴 온 연준은 올 1월 그 규모를 750억 달러로 줄였다. 양적완화 정책이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순차적으로 줄여 나간다는 게 연준의 계획이다.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테이퍼링 충격이 있을 거란 얘기다. 1차 테스트 격인 아르헨티나 쇼크를 버텨 낸 각 펀드의 ‘테이퍼링 맷집’을 눈여겨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과 올 1~2월 펀드 수익률을 점검해 봤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이다. 미국에서 이렇게 풀린 돈은 신흥국으로 흘러간다. 연준이 돈줄을 죄는 테이퍼링을 시작하면 반대로 안전자산인 선진국에 돈이 쏠린다. 이번 평가에서도 유럽과 북미 펀드가 연초 이후 3%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이 사실을 재확인시켜 줬다. 반면 신흥국 펀드들은 원금 손실을 내며 고전했다. 아르헨티나 쇼크 직격탄을 맞은 남미 신흥국 펀드는 -7.39%, 글로벌 신흥국 펀드는 -5.1%의 수익률을 나타냈다. 유럽 신흥국 펀드와 러시아 펀드 수익률도 각각 -6.63%, -9.8%였다.

 눈에 띄는 건 아시아 신흥국 펀드의 선전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국가 주식에 투자한 펀드는 1.22%, 동남아시아 펀드는 2.66%의 수익을 올렸다. 미래에셋 코친디아펀드, 한국투자신탁의 아시아그로스펀드는 올 들어 3%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박주명 한국투자신탁 홍콩법인장은 “아시아 신흥국은 다른 신흥국과 달리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할 뿐 아니라 미국·유럽 같은 대선진국 수출 비중이 높아 이들 시장이 좋아지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펀드 선전에 대한 다른 분석도 있다. 김훈길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유동성 완화정책을 취하면서 중국 시장 흐름이 개선돼 나타난 효과”라며 “중국은 변동성이 커 이 같은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프런티어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도 올 들어 7% 넘게 올랐다. 미국 양적완화 정책의 수혜를 보지 못했던 만큼 테이퍼링의 영향에서도 비켜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시장 규모가 작아 자금 유출입이 조금만 일어나도 수익률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수 있어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

 선진국 중에선 일본 펀드(-6.55%)가 가장 부진했다. 지난해 50% 넘게 오른 닛케이225에 힘입어 펀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지난해 호재로 작용했던 아베노믹스가 올핸 악재가 됐다. 김승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흔들리면 엔화 약세 기조도 약화되면서 신흥국엔 오히려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소비세 인상을 어느 정도 잘 견뎌 낼지가 일본 시장 향방을 가를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중에선 중소형주 펀드가 선전했다. 코스피가 2%가량 하락했던 두 달 동안 2.8% 수익을 올렸다. 중소형주는 코스피가 크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찬밥 신세가 된다. 상승장에선 대형주를 사는 게 수익률이 좋고, 하락장에선 안정성이 떨어지는 중소형주보다 대형주에 대한 투자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중소형주는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혔을 때 선전한다. 한국은 테이퍼링에 주식시장이 급락할 정도로 펀더멘털이 약하진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이런 특징이 펀드 수익률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업종별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헬스케어 업종 펀드가 선방했다. 해외 주식형 펀드 중에선 가장 높은 수익률(13.08%)을 보였고,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 상위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상원 동부증권 연구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망 자체가 좋은 업종이 헬스케어”라고 말했다. 고령화는 이제 선진국뿐 아니라 일부 신흥국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지난해 이후 성장의 계기(모멘텀)도 뚜렷해졌다.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 조치, 일명 오바마케어가 모멘텀이 됐다.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정부 역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를 육성해야 할 신산업 분야로 선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헬스케어 업종의 향후 성장성에 대해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노상원 연구원은 “지난해 급성장한 만큼 올해 하반기까지 성장세를 이어 갈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건설 상장지수펀드(ETF)와 반도체 ETF도 수익률 상위에 올랐다. 건설업의 경우 지난해 바닥을 다진 만큼 올해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반도체 업종은 SK하이닉스가 선전한 덕에 수익률이 높게 나왔다는 분석이다.

 원자재에 투자하는 커머디티 펀드(6.29%)도 좋은 성과를 냈다. 세부적으로는 금 펀드(11.83%)가 가장 빛났다. 테이퍼링이 시작되면서 주식시장이 출렁이자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덕이다. 지난해 30%가량 떨어지며 금값이 저점을 통과했다는 투자심리도 반영됐다. 올 들어 농산물 가격이 반등세를 보이면서 농산물에 투자하는 펀드 역시 8% 가까운 수익률을 보였다.

정선언·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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