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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짝'의 비극 … "방송 나가면 한국서 못 살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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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도중 목매 숨진 여성 출연자 전모(29)씨가 친구들에게 보낸 카카오톡이다. 오른쪽은 ‘짝’의 과거 방송 장면. [전씨 고교 동창 제공, SBS 화면 캡처]

“강압적으로 방송을 찍는다. 방송 나가면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SBS 남녀 커플 맺기 예능 프로그램인 ‘짝’ 여성 출연자가 녹화 도중 어머니와 이런 통화를 한 뒤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촬영 과정에서 과도한 심리적 압박을 받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다.

5일 0시 제주 서귀포시의 한 펜션. 여성 5명, 남성 7명 등 ‘짝’ 출연자 12명이 1층 거실에 모여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지난달 27일부터 촬영을 진행해 최종 선택만 남기고 회식을 하는 것이었다.

 0시30분쯤 여성 출연자 전모(29)씨가 “혼자 있고 싶다”며 2층 자신의 방으로 갔다. 전날 오후 11시에 어머니와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통화를 한 뒤였다. 한 시간 뒤인 오전 1시30분 전씨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2층 침실에 설치된 방송용 카메라에 잡혔다.

 30분 뒤 같은 방을 쓰는 여성 출연자 김모(29)씨가 왔다. 화장실에서 물 소리가 났다.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김씨는 PD에게 연락했다. PD가 화장실 문을 따고 들어간 게 오전 2시15분쯤. 김씨는 높이 1.8m 샤워 꼭지에 헤어드라이어 전깃줄로 목을 맨 상태였다. 119 구급대가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화장실에서는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 나,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적힌 노트가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메모는 모두 12줄로 ‘제작진들에게 많은 배려 받았다. 단지 여기서 짝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고 삶이 의미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동료 출연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수도권 대학 관리직 직원인 전씨는 주변 추천을 받아 직접 출연 신청을 했다. 면접을 거쳐 출연이 결정됐다. 지난해 9월 결혼 상대를 정해 상견례를 했으나 결별한 뒤 ‘짝’에 출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첫인상 선택에서 3명 남성의 지목을 받았다. 경찰은 “하지만 후반부 들어 남성 출연자들의 관심이 덜해졌다”며 “사망 당시는 최종 선택 전이었으나 전씨가 마음을 뒀던 남성이 자신을 택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유족과 지인들은 전씨가 촬영을 힘겨워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이모(53)씨는 “선택을 받지 못해 마음 고통이 컸다”고 했다. 촬영 도중 카카오톡 등으로 전씨와 대화한 고교 동창 A(30·여)씨는 “다른 사람들은 커플 되고 자기는 혼자 있는데 계속 (카메라가) 따라다녀 인격적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잠도 못 자고 많이 아팠다더라”고 전했다.

 전씨는 또 다른 친구 B씨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비련의 주인공 캐릭터로 잡아갔다. 화장실 앞까지 따라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용이 너무 내가 타깃이 된다. PD에게 따로 편집해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카카오톡을 받은 친구 A씨는 “(전씨가) 인격적으로, 여자로서 힘들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짝’에 나왔던 한 여성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살 소식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나중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지만 촬영 당시에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 되면 우울해지고 감정이 격해진다”고 말했다.

 SBS 측은 “숨진 전씨가 시종 평온하게 녹화에 임해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보고 제작진의 책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촬영 내용이 담긴 메모리 카드를 확보해 촬영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 측은 “무리한 촬영 강요가 있었다면 제작진을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에서 촬영한 내용은 ‘짝 70기’로 이달 말 방송 예정이었다. 하지만 SBS는 이를 방영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5일 밤 방송분도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의 월드컵 평가전으로 대체했다. 짝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할 것인지도 검토 중이다. 한 과거 출연자는 ‘짝’ 인터넷 카페에 “참가하신 분들은 사회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데 공감할 것”이라며 “폐지하는 것이 맞다”(ID 어거스틴)는 의견을 올렸다.

 SBS는 이날 사과문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김효은·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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