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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① 물떼새 놀랄까, 숨쉬기도 벅찹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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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쳐 흐르던 금강이 서해와 몸을 섞는 어귀에 유부도가 있습니다. 춘설처럼 분분한 봄의 행방을 가늠하기 위해 작은 어선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군산이 지척인 이곳은 바닷바람과 개흙에 기대어 사는 뭇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수많은 도요와 물떼새, 그리고 검은머리물떼새(천연기념물 326호)가 생명의 숨결을 더합니다.

 등과 배의 간결한 흑백 대비, 부리와 다리의 산뜻한 오렌지빛 검은머리물떼새는 귀인의 풍모입니다. 귀인을 친견하는 일이 어디 쉽던가요? 물때와 바닷물 수위를 모두 충족한 뒤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물 가장자리에서 서식하는 이들은 조수간만에 따라 자리를 옮기니까요.

겹겹이 도열한 기병이 행진하듯 밀물은 거대한 포말을 흩날리며 몰려듭니다. 아스라이 포진했던 검은머리물떼새가 종종걸음으로 퇴각합니다. 자꾸만 다가오는 이들을 작은 텐트 안에서 지켜봅니다. 숨을 쉬기도, 침을 삼키기도 벅찹니다. 마침내 솟구쳐 오르는 새들의 비상. 바람과 파도와 새 소리가 뒤섞여 작은 섬을 휘감습니다. 만조를 신호로 기세가 꺾인 바닷물이 스르르 돌아섭니다. 기병도 새도 사라진 수면 위로 솜털이 둥실 떠다닙니다. 햇살을 가득 실은 솜털은 또 어디론가 향합니다. 솜털처럼 봄은 그렇게 더디 오는가 봅니다.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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