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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빌라 안 부럽네 … 진화하는 다세대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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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다세대 주택 꼭대기층 펜트하우스. 89.56㎡(약 27평) 규모이지만 유리로 된 천창이 있어 공간이 넓고 환해보인다. [건축사진가 박영채]

어느 동네든 다세대 주택은 마치 정해진 공식을 따르듯이 내부의 어두운 계단에서 손바닥만한 창문까지 획일적이다. 주로 맨 위층에 거주하는 건축주의 주거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사비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다세대 주택이 좀더 쾌적해질 수는 없는 걸까.

 건축가 한만원(HNS건축사무소 대표·57)씨가 설계한 서울 서초동 원룸 주택 L하우스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L하우스에는 유리 천창(天窓·지붕에 만든 창)을 낸 건축주의 공간, 밖으로 낸 계단과 아담한 공용 로비 등 건축주와 세입자를 배려한 손길이 곳곳에서 읽힌다.

계단이 외부로 난 L하우스 후면 외관.

 ◆다세대 주택의 펜트하우스=흔히 펜트하우스(옥상가옥이라는 뜻)라면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꼭대기층의 살림집을 떠올린다. 5층짜리(1층은 주차장) 다세대인 이 집에도 펜트하우스가 있다. 건축주가 살고 있는 5층이다. 대형 평수의 호화 펜트하우스와 달리 이 집의 꼭대기층의 면적은 89.56㎡(약 37평·다락 공간 제외)이지만, 실제 크기보다 훨씬 넓어보이는 게 특징이다. 바닥 면적의 크기로 승부하는 경향을 벗어나 답답함이 덜 느껴지도록 설계한 덕분이다. 공간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힘이다.

내부가 넓어보이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위의 다락방 높이만큼 높아진 천장, 그리고 거실과 침실 사이에 천창이 있는 아트리움(유리지붕이 있는 실내공간)이다. 천창은 볕이 뜨거운 여름에는 자동 블라인드로 덮을 수 있으면서도 겨울에는 집안에 햇빛을 끌어들여 따뜻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테라스도 가족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핵심 공간이다. 건축주 강현주씨는 “날씨가 좋을 때는 가족들이 테라스에서 식사한다. 주방에서도 문 하나로 바로 연결되는 이곳이 마당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의 다락 공간. 미니 2층 효과를 낸다(사진 왼쪽), 빛이 마당 깊숙이 들어오는 지하층의 스튜디오(사진 오른쪽).

 ◆ 로비·뒷마당도 차별화=이 집은 계단을 외부에 낸 것도 특징이다. 각 원룸 세대의 앞 뒤가 열리는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출입구에는 작은 로비, 건물 뒷쪽에 공용 마당이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지하 공간도 100% 활용했다. 건축주의 오디오 룸과 음악 스튜디오가 자리한 이곳은 바깥에 빛과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두었다. 건축 비용은 일반 다세대 주택 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대 공간은 3,3㎡당 400만원, 펜트하우스는 3,3㎡당 6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한씨는 “동네 골목골목의 다세대 주택 역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주거 공간”이라며 “문제는 디자인이다. 이제는 다세대 주택 설계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할 게 아니라,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게 어떻게 도시 경관과 일상생활의 질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한만원(57)=홍익대 건축학과, 프랑스 라빌레트 건축학교 졸업(석사). 95년까지 프랑스 마리오 보타 스튜디오 등에서 일했다. 가나아트샵, 안중성당, 왈종미술관 등 설계. 극작가 한운사(1923~2009) 선생의 장남으로 한운사 기념관(충북 괴산)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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