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회계감사 국회 이관은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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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아직 이관에 따른 위헌 소지 및 정부 내 저항으로 인해 현실적인 이행 여부는 장담키 어려우나 이런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된 사실은 매우 바람직하다.

감사권은 헌법이 대통령 직속 감사원에 부여한 업무로 대통령의 권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盧대통령이 이를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국회에 넘기겠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대선 공약 이행 차원을 넘어 의회와 행정부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는 의지라고 이해된다.

우리 국회가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국회의 비전문성과 비능률 등 자체적 결함 못지 않게 인적 자원과 제도상 한계에도 원인이 있었다.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최근 국회법 개정으로 확보한 감사청구권만으로는 행정부의 업무를 따지고 부조리를 적발하는 게 쉽지 않았다.

또 결산안.예산안 심의 역시 수박 겉 핥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3권 분립의 구조에서 제 몫을 해내는 미국 의회의 역할은 똑같은 대통령제를 택하는 우리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미 의회는 3천여명의 직원을 가진 회계감사국(GAO)과 의회예산국(CBO) 및 의회조사국(CRS) 등 제도적.인적 지원이 있기 때문에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헌법상 대통령 직속기관의 권한으로 돼 있는 기능을 이관하는 데 따른 법적 문제와 해당기관의 반발 때문이다.

감사원은 새 정부 출범 전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면 정당 간 이해가 엇갈려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국회가 회계감사 기능을, 행정부가 직무감찰 기능을 하는 데 따르는 중복감사 우려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盧대통령은 '파견 형식이든 어떻든' 넘기겠다고 밝혔다. 편법 시비가 있을지 모르나 행정부와 의회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같은 기능의 재조정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