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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 쌓고 일부 시민들 저항-프놈펜의 최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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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프놈펜·방콕·사이공=외신종합】17일 수도 「프놈펜」에 입성, 정부군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5년간의 「크메르」내전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둔 뒤 혁명해방위원회를 설치한 「크메르·루지」반란군은 첫 방송을 통해 『우리는 정복자로서 「프놈펜」에 왔다』고 선언하고 「크메르」정부의 모든 관리와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것이며 백기를 들고 공보성에 출두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앞서 「프놈펜」 정부군 사령관 「메이·시찬」준장은 정부군에 전투중지 및 투항을 명령했다.
반군치하의 「프놈펜」방송은 전 「론·놀」대통령의 동생 「론·논」장군, 「프놈펜」사령관 「침·초우」장군 등 수많은 군인과 관리들이 속속 투항해 오고 있다고 밝혔는데 반군입성에 앞서 「롱·보레」 수상 등 7인 최고위원 4명을 포함한 1백40명의 「크메르」인은 11대의 공군기 편으로 태국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프놈펜」 『7적』에 포함된 「시리크·마타크」, 「인·탐」 등 두 전 수상은 「크메르」에 남은 것으로 믿어지는데 잔류요인 및 2천명의 외국인들의 운명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이공」외교관들은 「인·탐」씨는 태국국경부근 「바탐방」「정글」에 은신중이며 반공저항전선을 조직할 것 같다고 전했다.
「프놈펜」에서 일본의 공동통신기자와 만난 「마타크」공은 『나는 나의 조국을 떠나지 않겠다. 나는 탈출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나는 나와 나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국민들과 함께 남겠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전문가들은 혁명 해방위가 1차적으로 「크메르」 정부요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피의 숙청』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북경의 「시아누크」는 이를 부인했다.
「크메르·루지」군이 입성하던 날 「프놈펜」시민들은 한때 중심가에 「바리케이드」를 쳐 반군의 진입을 저지하려 했으나 그들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대대적인 환영군중대회를 벌이기도 했으며 시내 각 건물과 「메콩」강 상의 각종 선박에는 백기가 게양돼 시 전역은 백기의 숲을 이루었다. 반군들은 탈취한 미제「지프」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투항을 권유했는데 선공대와 함께 입성한 「키우·삼판」도 가두방송에 참여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적십자 안전지대』로 선포한 「로열·프놈펜·호텔」엔 2천명 이상의 부상자·노약자·환자 및 외국특파원들이 머물러있는데 정부군 패잔병과 「크메르·루지」군은 똑같이 적십자위의 중립지대를 존중하고 있다.
공산군 병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순시하면서 그들을 에워싸고 뒤따르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 속에서 가끔 하늘에 대고 승리를 위해 축포를 쏘아댔다.
수도방위에 참여했던 정부군 제2포병사단 소속의 장갑차량 14대도 역시 백기를 달고 시내를 돌아다녔고 이 장갑차에 탄 공산군은 『만세』를 부르면서 「프놈펜·호텔」앞에 닿자 그곳에 있던 정부군병사들과 얼싸안고 함께 태워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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