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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들이 편안해야 기술 혁신" 명품 업계 첫 최고등급 친환경 인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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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V)’의 새 사옥인 ‘BV 빌라’ 전경. 18세기 건립 당시 건축 원형과 정원 조경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 직원용 구내식당 전경. BV 창조부문 총괄책임자인 토마스 마이어가 식탁·의자·조명 등 디자인 세부사항까지 감독해 아늑하게 꾸몄다. 3 BV 빌라의 옛 건물 회랑은 장인 작업장으로 쓰이고 있다. 본래 기둥만 빼곤 유리로 돼 있어 채광이 매우 좋다. 4 직원 식당 야외공간은 마치 휴양지 리조트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5 BV 장인들의 작업공간은 건물 어디든 자연광이 최대한 들도록 설계됐다.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마르코 비차리 최고 경영자. 자사 제품 슈트를 입고 있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BV)는 지난해 8월 새 사옥 겸 생산시설을 완공했다. 브랜드가 시작된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州) 비첸차에서다. 브랜드가 성장 중이니 새 시설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 일개 사업체의 움직임일 뿐인데도 요즘 명품 업계에선 이 회사에 관심들이 많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불황 탓에 매출이 게걸음인데도 BV는 쑥쑥 크고 있다. 모회사 케어링(Kering) 그룹 실적에도 큰 기여를 하는 효자 브랜드다. 케어링은 BV와 구찌 등을 거느리고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과 세계 명품 업계를 양분하고 있다. ‘BV가 어쩌는지 보자’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쏟아지는 관심을 의식한 듯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BV 최고경영자(CEO) 마르코 비차리(51)는 새 시설을 두고 “명품 업계 최초로 최고 등급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탈리아 역사유물급 건축과 BV의 지속가능 경영전략이 한데 모인 상징적인 곳”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BV는 아시아 언론 중 중앙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에만 시설을 처음 공개했다. 비차리의 설명을 따라 week&이 현장을 둘러봤다.

작업장 환경도 명품 브랜드의 조건

‘보테가 베네타 빌라(Bottega Veneta Villa)’. BV가 비첸차에 지은 새 사옥 이름이다. ‘빌라’는 우리에겐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부르는 말로 익숙한 단어다. 본래는 로마 시대 상류층 전원저택을 일컫는 말이다. BV 빌라는 18세기 건립된 베네치아 지역의 저택·부지를 사들여 만들었다.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18세기 건축물이다. 비차리 CEO는 “2005년 부지 매입 후 각종 건축허가를 얻는 데 5년 걸렸다. 유물급 건축이라 정부 허락이 필수였다. 정원과 자연도 그대로 복원·유지하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허가가 났다. 해서 빌라는 초기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없는 빈 땅이 많아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굳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곳을 골랐을까. “빌라가 BV를 더 특별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게 만들 것”이라는 게 비차리 CEO의 설명이었다. 부지 매입 후 준공까지 꼬박 8년. 5만5000㎡에 이르는 빌라 부지 중앙엔 고풍스러운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 빌라 건물 서편은 브랜드 유산을 총망라해 놓은 구역으로 꾸며져 있었다. 브랜드 역사 박물관부터 BV 대표 상품인 ‘카바(Cabat) 가방’의 한정판 모둠 공간, 40여 년간 제작한 5만여 종류의 가방 원형을 모아놓은 보관소까지, 외부 접근이 차단된 비밀스러운 장소가 4개 층에 걸쳐 마련돼 있었다. 소박하고 단아하면서도 웅장해 보이는 옛 빌라 건물 뒤로 최신식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빌라 뒤편으로 난 회랑(回廊)은 새 건물로 가는 통로면서 숙련도 최고 장인들의 작업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높은 천장, 실내인데도 바깥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밝고 환했다. 공방의 장인이자 장인학교 선생인 이들이 후배이자 후학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빌라 어느 공간이든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다. 마치 대학 캠퍼스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보테가 베네타 `카바` 가방

 BV란 브랜드 이름엔 별 뜻이 없다. 대개 명품 브랜드는 창업자 이름을 많이 쓴다. 역사적 유산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한데 BV는 그저 ‘베네치아 지역 공방’이란 뜻이다. 예부터 베네치아 지역은 손기술 좋은 가죽 장인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죽을 두툼한 실처럼 잘라서 머리 땋듯 엮는 기법인 ‘인트레차토 필라티(intrecciato filati)’가 유명했다. BV는 이 방식을 브랜드 상징처럼 내세우며 발전해 왔다. 1966년 등장해 2001년 케어링 그룹이 인수하고서부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통 크기 여성용 가죽가방 가격은 500만~1000만원 선. 장인들이 손으로 가죽을 엮는 방식이어서 200만~300만원대 다른 명품 브랜드 가방보다 2~3배 비싼 편이다. 어렵고 독특한 제작 기법, 최상의 재료 수급에 드는 특별 노력, 브랜드가 구축해 온 재미있는 스토리는 명품 브랜드의 공통 요소다. 여기에 BV는 이번 빌라 같은 명품 작업장 환경을 명품의 새 요소로 추가한 듯 보였다.

비차리는 “명품 브랜드는 첨단기술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최고 경지 전통기술 보존·혁신이 핵심이다. 우리 장인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야 이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빌라가 마치 “코쿤(cocoon) 같다”고도 했다. 누에고치처럼 누군가를 보호하는 장치가 코쿤이다. 비차리는 “직원들이 행복할 때 가장 좋은 성과를 얻는다. 이 빌라는 최고의 장인, 최고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력 덕분인지 BV는 이탈리아 경제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선정한 ‘2014 가장 일할 만한 직장’에 선정됐다. “명품 업계 최초다.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해 실제로 인정하는 수준을 측정한 결과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48개국, 500만 명 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끝에 BV가 뽑혔다.”

장인을 위한 명품 공간

BV는 빌라를 지으면서 이사를 했다. 본래 비첸차 시내 쪽에 있던 사무실을 몬테벨로라는 작은 마을로 옮긴 것이다. 원래 있던 곳에서 18㎞가량 떨어진 곳이다. 한적한 시골의 장인들에겐 일상생활의 큰 변화인 셈이다. 비차리는 “직장 이전으로 불편을 겪을 근로자를 위해 1000유로(약150만원)씩 연봉을 인상했다. 혹시 거주지를 옮기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사 비용 일부도 지원했다”고 밝혔다. 취재 중 점심을 먹으러 들른 직원식당에선 흥미로운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오늘의 저녁 도시락 메뉴’였다. 아침·점심을 회사에서 해결하고 장인들은 오후 5~6시면 퇴근한다. 야근이 없는 명품 브랜드 작업장에서 왜 직원들에게 저녁 도시락을 싸줄까. 답은 “여성 장인들이 퇴근 후 저녁식사를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BV 장인 대부분은 여성이다. 비차리 CEO에 따르면 비첸차 지역엔 기술 숙련도가 높은 여성 장인이 많았지만 상품력을 갖춘 회사가 없어 여성 장인 실업률이 90%에 달했다. BV가 주도해 여성 장인 조합을 설립하고 장인 육성 학교를 세운 게 2000년대 초반이다. BV는 지역경제, 현지 장인과 상생하는 전략을 세웠고 꾸준한 성장을 위해 장인학교도 설립했다. 명품 생산과 관련한 모든 요소가 장인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일할 만한 직장 1위 선정’ 자체가 명품 브랜드의 필수조건이란 얘기다.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 제작기법인 ‘인트레차토 필라티’. 넓적한 가죽끈을 머리 땋듯 엮는 방식으로 베네치아 지역의 전통 수공예 기법이다.

높은 가격엔 그럴 만한 이유 있어야

“집처럼 좋은 직장 환경을 조성하는 등 장인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는 건 좋지만 그래서 제품 가격이 너무 비싸 소비자가 외면하면 어쩌느냐”고 물었다. “물론 우린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BV는 로고도 없이 꾸준히 성장해 온 브랜드다. 보자마자 눈에 띄는 다른 브랜드보다 불리할 것 같은데도 소비자들이 좋아한다. 그 결과 BV 매출은 지난 4년간 150% 이상 커졌다. 더 많은 명품 소비자가 로고가 드러나지 않아도 최상 품질의 제품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비차리는 “명품 가격엔 최상 품질과 장인정신이 반영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제품 자체보다 기업의 숨은 노력까지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BV 빌라가 친환경·에너지 인증(LEED) 최고등급(플래티넘)을 받은 걸 예로 들었다. “명품·패션 업계에선 첫 시도다. 기업 입장에선 시간·경제적으로 부담이 있는 프로젝트다. 930㎡의 태양전지판으로 전기를 얻고 건물 하층토와 열교환 방식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공조 시스템도 갖췄다. 외부 자연광이 달라지면 자동으로 조도가 달라지는 장치도 마련해 에너지 낭비를 없앴다. 단기간 수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업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친환경, 지속가능한 경영 등은 명품 업계만의 전략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화두는 전 산업계에서 하도 강조되다 보니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비차리는 “명품 소비자라 해도 아직은 친환경 등 기업의 상품 외적인 노력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명품 소비자가 그중에선 제일 먼저 변화할 것이라 기대한다. 5~10년 내에 바뀔 것이다. 또 명품의 기본인 최상의 원료·재료가 꾸준히, 안정적으로 제공되려면 환경을 위한 노력은 필수다. 다른 브랜드 상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BV 제품 구입에 쓰는 고객을 위해서라도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인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빌라 같은 시설 건립은 단기 성과나 이윤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그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걸까. BV는 지난 21일(현지시간) 2013 회계연도 실적 발표에서 전년 대비 13.8% 성장했다고 밝혔다. 전세계 매출 10억 1600만 유로(약 1조 5000억원)를 달성한 것이다. 타 명품 브랜드가 한 자릿수 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성적이다.

비첸차·밀라노(이탈리아)=강승민 기자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새 사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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