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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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토끼띠의 새 아침이 밝아온 지도 벌써 나흘이 된다. 아직도 서기는 없다. 신통한 길조도 보이지를 않는다. 묘한 일이다.
「포박자」에 보면 『흰토끼는 수천년이요, 오백살이 넘어서 비로서 희게 된다』고 했다. 또 주자의 은혜가 여러 해에 걸치면 흰토끼가 나타난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토끼가 반드시 길한 짐승으로 여겨진 것만은 아니다. 시경엔 이런 구절이 있다.
『…토끼 있어 원원한데 꿩은 망에 걸리다….』
토끼는 유유자적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덕을 쌓은 훌륭한 꿩은 새 그물에 걸려 괴로워한다는 뜻이다.
이 때의 토끼는 간악하고 교활한 것으로 풀이해야 얘기가 된다. 곧 소인배는 잘 사는데 군자는 불행하게 지낸다는 비유가 여기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 이렇게 괴로운 인생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뒤에 숨어 있다.
그러나 정초부터 이렇게 청승맞은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꼭 토끼띠에만 인생이 괴로워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교토삼굴」이라는 말도 있다. 제나라 때 생긴 말인데 토끼는 교활하기 때문에 언제나 몸을 숨기기 위해 굴을 셋씩이나 파놓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아나가노라면 이런 일 저런 일 겪는 것도 많다. 밑지는 일도 많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조금도 다치지 않고 밑지지 않으려고, 변명의 여지를 남겨 놓고, 몸 피할 곳을 미리 만들어 놓는게 토끼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뒷 얘기가 따른다. 사냥꾼도 한두번쯤 속은 다음에는 토끼의 꾀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구멍으로 피했으니까 저 구멍으로 빠져 나오려니 하고 지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토끼의 잔꾀는 자기 무덤을 자기 손으로 파는 결과를 맺는다는 뜻이다. 지자는 지에 깨지고 재사는 재에 쓰러진다. 잔재주만으로 세상살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라고 토끼들이 물러나고 꿩이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토삼굴의 잔꾀가 줄어들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구나가 다 정도에서 멀어지고 큰길을 활개치며 곧게 걷지 못한다는 얘기도 아닐 것이다.
원단은 이제 지났다. 이제는 꿈을 꿀 때는 아니다.
정초에 꾸는 새해의 꿈은 초이틀에 꾸는게 진짜다. 설날에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소용이 없다. 3일 이후의 꿈은 모두 개꿈이다.
또한 초이틀의 꿈이 아무리 좋아도 꿈은 결국 꿈으로 끝난다. 꿈만으로 새해가 부풀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끼띠라고 새해가 더욱 길한 것도, 더욱 흉한 것도 아니다. 그저 새해의 태양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마냥 찬란하게도, 마냥 무정하게도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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