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부병 흔적까지 그렸다, 조선 초상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사시(斜視)도 있는 그대로(사진 왼쪽) 1910년 경술국치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의 초상화. 마지막 어진화가 채용신은 1911년 사시(斜視)인 매천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반점·털까지 선명하게(사진 오른쪽) 1796년 화원 이명기와 김홍도가 공동으로 제작한 ‘서직수 초상화’. 얼굴 왼쪽 볼에 묘사된 색소모반 3개 중 하나에는 털 오라기 3개가 선명하다.

이성낙(76) 가천대 명예총장은 1960년대 독일 뮌헨의대 유학시절, 인상 깊은 수업을 들었다. 세계피부과학회장이던 알프레드 마르치오니니(1899~1965) 교수의 강의였다. 주제는 ‘미술품에 나타난 피부 질환’. 의술과 예술을 접목한 마르치오니니 교수는 그의 인생 행로에 영향을 미쳤다. 내과를 지망하던 이 총장을 피부과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50년, 이 총장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평생 천착한 이 주제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논문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일 학위수여식에 젊은 학생들과 나란히 선 이 총장은 “조선시대 초상화 519점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그 역사적 의미와 사회성을 꿴 것이 보람 있다”고 말했다.

 전국 박물관과 미술관을 이 잡듯 뒤지며 초상화 자료 모으기에 발품을 판 결실이다. 이미 국제적인 피부학 전문 학술지에 ‘초상화에 나타난 백반증’ 등 논문으로 이 분야의 독창성을 인정받은 이 총장은 “조선시대 초상화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해 정확하게 묘사됐는지를 과학적으로 인증 받아 기뻤다”고 회고했다.

 조선 초상화 519점을 분석한 결과, 이 총장은 각기 다른 20가지 피부 증상을 발견했다. 무모증(無毛症)과 백반증(白斑症), 기타 사시(斜視) 등이다. 특히 14.06%에서 천연두 반흔이 나타나 조선시대에 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전염병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 예가 1872년 그려진 태조의 어진(御眞)이다. 이마 부위에 피부병변인 작은 혹, 모반(母斑)이 드러나 있다. 조선을 개국한 왕의 초상화에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원칙이 예외없이 적용된 것이다.

 마지막 어진 화가 채용신(1850~1941)이 1911년 그린 ‘황현 초상’도 사시를 적확히 그렸다. 1796년 이명기와 김홍도가 공동제작한 ‘서직수 초상’에는 얼굴 왼쪽 볼에 색소모반(色素母斑) 3개가 드러나 있는데 그중 하나에 털 오라기 3개가 선명하게 묘사돼있다. 희귀한 군집모(群集毛)다. 이 정도로 세밀한 ‘확대경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하지만 조선처럼 전염성 강한 천연두가 큰 사회문제였던 17~18세기 중국과 일본 초상화에는 반흔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 초상화와 다른 점이다. 이 총장은 여기서 중요한 결론을 얻는다. 조선 화원들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초상화를 그린 반면, 중국과 일본 화원들은 ‘있는 데도, 못 본 듯’ 그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런 초상화에 나타난 일종의 ‘외모 장애자’들이 대부분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조선 선비사회의 포용성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장은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조선의 시대정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평생 수집한 동서양의 초상화 자료목록을 공개하며 이 총장은 후학들이 더 분발해주길 부탁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